명성황후 시해 관련 일지

  • 입력 2006년 6월 5일 03시 00분


7월 25일 청일전쟁 개전

10월 15일 이노우에 가오루, 주한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됨

11월 20일 이노우에, 고종에게 내정개혁안령 20개조 요구

4월 17일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를 공식화한 시모노세키조약 체결

4월 23일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3국 간섭’ 시작

5월 5일 일본, ‘3국 간섭’에 굴복해 랴오둥 반도 반환 동의

5월 28일 친일 성향의 2차 김홍집 내각 붕괴

6월 5일 무쓰 무네미쓰 외상, 사이온지 긴모치 문부상에게 업무 위임하고 요양 떠남

6월 20일 이노우에, 정부와 협의차 일본 도착

7월 2일 이노우에, 일본 각의에 기증금을 미끼로 명성황후 회유책 제안

7월 5일 아오키 슈조 주독일 일본 공사, 3국 간섭이 ‘매장만 남은 시체’라고 보고

7월 6일 박영효 내무대신 조선에서 실각

러시아, 대청차관 협정에서 독일을 배격, 3국협력 붕괴

7월 7일 박영효, 일본으로 재망명

7월 8일 야마가타 아리토모 대장,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편지를 요양 중인 무쓰 외상에게 보냄

7월 10, 11일 이노우에, 무인 출신 미우라 고로를 자신의 후임으로 천거

명성황후 회유에서 제거로 일본 정부 정책의 전환을 의미

7월 14일 이노우에, 한국으로 떠나며 “한 달도 안돼 돌아올 것” 이라며 기자회견

7월 22일 미우라, 주한 일본전권 공사로 내정

9월 1일 미우라, 주한일본공사 부임

9월 17일 이노우에, 미우라에게 업무 인수 인계 후 서울 출발

9월 21일 미우라, 아케치 겐조 한성 신문 사장에게 ‘여우사냥’ 운운

10월 8일 미우라, 일본군과 일본 낭인 이끌고 명성황후 시해

2월 11일 고종, 아관파천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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