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원문록은 6·25전쟁 때 납북된 위당이 남긴 행장, 전(傳), 제문, 묘비문, 서(序), 시(詩), 화제(畵題), 편지, 논문 등의 자필 원고를 묶은 것. 위당이 교수로 재직했던 연세대에서 1967년 영인본으로 출간했던 것을 이번에 정 교수가 한글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3권(태학사)으로 출간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누나인 정 교수는 발문에서 “변변치 못한 번역으로 아버지 글이 세상에 나오는 게 죄스럽다”며 “번역이 막힐 때마다 ‘아버지! 꿈에서라도 가르쳐 주세요!’라고 빌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 글에서 부친에 대한 애모의 정을 위당의 어머니(정 교수의 할머니)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풀어냈다. 위당은 어머니가 둘이었다. 생모인 달성 서씨와 막내였던 위당을 종손으로 입적한 큰어머니이자 양어머니였던 경주 이씨였다.
“그리워 하 그리워 님의 신색 하 그리워/닮을 이 뉘 없으니 어댈 향해 찾으오리/남은 이 두어 줄 눈물 어려 캄캄하고너.”
양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위당의 이 시조는 부친에 대한 정 교수의 그리움을 닮아 부전여전(父傳女傳)이 따로 없는 듯하다.
담원문록에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극진했던 위당의 면모가 곳곳에 담겨 있다. 특히 위당이 강화학파의 스승들과 나눈 애틋한 사제의 정은 감동 그 자체다. 위당은 어느 비 오는 날 남대문역 앞에서 우연히 스승인 난곡 이건방을 만나자 진흙탕 속에서 무릎을 꿇고 바로 절을 올렸다. 난곡의 6촌 형인 경재 이건승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중국으로 망명한 뒤에도 제자인 위당에게 열흘이 멀다 하고 편지를 보내 제자의 공부의 진척을 챙겼고, 제자에게 받은 편지를 표구하여 둘 정도로 내리사랑을 펼쳤다.
정 교수는 “담원문록의 첫 글이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했을 때 금산군수로 있다가 자결했던 홍범식(벽초 홍명희의 아버지) 선생의 행장”이라며 “아버지의 피맺힌 슬픔과 원한, 그리고 광복에 대한 치솟는 불길이 이 기록들의 고갱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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