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당 정인보선생 ‘담원문록’ 딸 정양완 교수가 한글로 번역

  • 입력 2006년 6월 6일 03시 02분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1893∼1950) 선생의 한문 문집인 ‘담원문록(담園文錄)’이 그의 셋째 딸인 정양완(77·국문학·사진)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담원문록은 6·25전쟁 때 납북된 위당이 남긴 행장, 전(傳), 제문, 묘비문, 서(序), 시(詩), 화제(畵題), 편지, 논문 등의 자필 원고를 묶은 것. 위당이 교수로 재직했던 연세대에서 1967년 영인본으로 출간했던 것을 이번에 정 교수가 한글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3권(태학사)으로 출간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누나인 정 교수는 발문에서 “변변치 못한 번역으로 아버지 글이 세상에 나오는 게 죄스럽다”며 “번역이 막힐 때마다 ‘아버지! 꿈에서라도 가르쳐 주세요!’라고 빌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 글에서 부친에 대한 애모의 정을 위당의 어머니(정 교수의 할머니)에 대한 남다른 사랑으로 풀어냈다. 위당은 어머니가 둘이었다. 생모인 달성 서씨와 막내였던 위당을 종손으로 입적한 큰어머니이자 양어머니였던 경주 이씨였다.

“가까이 곁에 가면 말로 못할 무슨 냄새/마시어 배부른 듯 몸에 품겨 봄이 온 듯/코끝에 차마 남은가 때때 맡아 봅니다.” 위당을 낳자마자 정을 떼야 한다며 바로 큰동서에게 보낸 생모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시조다.

“그리워 하 그리워 님의 신색 하 그리워/닮을 이 뉘 없으니 어댈 향해 찾으오리/남은 이 두어 줄 눈물 어려 캄캄하고너.”

양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위당의 이 시조는 부친에 대한 정 교수의 그리움을 닮아 부전여전(父傳女傳)이 따로 없는 듯하다.

담원문록에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극진했던 위당의 면모가 곳곳에 담겨 있다. 특히 위당이 강화학파의 스승들과 나눈 애틋한 사제의 정은 감동 그 자체다. 위당은 어느 비 오는 날 남대문역 앞에서 우연히 스승인 난곡 이건방을 만나자 진흙탕 속에서 무릎을 꿇고 바로 절을 올렸다. 난곡의 6촌 형인 경재 이건승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중국으로 망명한 뒤에도 제자인 위당에게 열흘이 멀다 하고 편지를 보내 제자의 공부의 진척을 챙겼고, 제자에게 받은 편지를 표구하여 둘 정도로 내리사랑을 펼쳤다.

정 교수는 “담원문록의 첫 글이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했을 때 금산군수로 있다가 자결했던 홍범식(벽초 홍명희의 아버지) 선생의 행장”이라며 “아버지의 피맺힌 슬픔과 원한, 그리고 광복에 대한 치솟는 불길이 이 기록들의 고갱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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