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44년 英윌리엄스 YMCA 설립

  • 입력 2006년 6월 6일 03시 02분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도포 입고 갓 쓴 선비와 중절모를 쓴 외국인. 그 사이에 포즈를 취한 한 무리의 야구선수들….

1911년 평양에서 경기를 할 당시의 ‘YMCA 야구단’ 모습이다.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의)는 한국 최초의 야구단이자 신식과 양식 즉, 근대화의 한 상징으로 눈길을 끌었던 이 야구단 창설 외에도 이 땅에서 한 일이 많다.

YMCA는 영국 런던 히치콕로저스 상점의 점원이던 조지 윌리엄스 등 12명에 의해 1844년 6월 6일 만들어졌다.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03년 10월 28일. 정회원 28명, 준회원 9명이 참가한 가운데 황성기독교청년회(서울YMCA의 전신으로 초대 이사장 게일, 초대총무 질레트)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됐고, 1914년 한국YMCA 전국연맹이 결성됐다.

황성기독교청년회는 이후 교육, 계몽, 선교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당시 쟁쟁한 인물들이 대거 참여한 덕분이었다.

설립 초기 이상재 윤치호 김정식 남궁억 등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지도자들이 참여했고 이후 상동교회의 진덕기를 비롯한 평민 출신의 청년 애국지사들도 가담했다.

1913년 이상재가 종교부 총무로 취임하면서 YMCA의 사업 영역이 대폭 확장된다. 종교사업은 물론이고 목공 천공 제화 염색 사진 인쇄 등 각종 실용적인 기술교육과 유도 검도 축구 야구 등 운동경기 보급에도 나섰다. 토론회 등 각종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YMCA는 1919년 2·8독립선언의 산실 역할을 하는 등 독립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 근대화,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계몽운동, 농촌운동, 전쟁구호운동, 청소년운동, 부정부패추방시민운동, 한강물 되살리기 시민운동 등을 전개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민주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YMCA는 세계적으로 봉사와 헌신을 바탕으로 활동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 왔다. 1844년 창립 이래 160여 년이 지난 지금 120여 개국에 1만여 조직과 300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 사회단체로 성장했다. 창립 당시 윌리엄스는 자신이 꾼 작은 꿈이 이토록 큰 성과를 이뤄 낼지 짐작이나 했을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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