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미석]함부로 쓰는 역사

  • 입력 2006년 6월 7일 03시 00분


아마도 후문 근처였던 것 같다. 덜컹거리며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는 허니문카 같은 놀이기구랑 맥 빠져 보이는 원숭이들과 그만그만한 동물들이 갇혀 사는 우리도 있었는데, 지금은 자취도 없이 다 사라졌다.

오랜만에 전시를 보러 덕수궁을 다시 찾았다. 조선 왕조의 끝자락을 함께 지켜본 건물들이 있어서인지 왠지 이곳에 오면 ‘근대의 공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요즘 이곳 미술관에서는 ‘근대의 꿈: 아이들의 초상’전이 열리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1900년대부터 그림 속에 나타난 근대의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전시다. 흥미로운 점은, 어린이를 조명한 작품들인데도 밝고 즐거운 아이들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짚신을 신은 채 젖먹이 동생을 업은 아이, ‘몽실언니’처럼 싹둑 자른 머리에 무표정한 소녀, 구두닦이 소년…. 작품 속에 나타난 근대의 아이들을 지금의 눈으로 보면 조금씩 우울해 보인다. 그 아이들은 따스한 보살핌을 받기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존재였다. 그들의 자손이 우리다.

전시를 기획한 기혜경 학예사는 “어린이 소재의 작품이라면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들을 떠올리지만 근대에 제작된 작품 중에서는 놀이의 세계에 빠진 아이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며 “당시 현실이 아이들도 놀이에 전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기 때문인 듯하다”고 풀이했다. 아이들이 아이들답지 못할 만큼 우리의 근대는 궁핍하고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전시회를 보고 나오면서 뜬금없는 생각들이 머리에 맴돌았다. 마치 그림 속 아이들이 ‘너희가 근대를 아느냐’고 묻는 듯했기 때문이다. 온갖 위원회를 만들어 많은 세금 축내 가며 과거사를 청산한다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이 사회는 과연 스스로의 근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나라 잃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만들어진 처참한 역사에 대고 돌아서서 삿대질하고 있을 만큼 지금, 여기, 우리가 만들어 가는 역사가 그렇게 떳떳한 모습인지 회의가 생긴다.

핑계 대거나 손가락질할 외부의 적은 사라졌지만 우리끼리는 더 분열되고, 자유와 부가 넘쳐 나지만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다. 근대를 옥죄었던 일제 식민통치가 사라진 지금도 ‘개혁’이든 뭐든 명패를 걸고 작업을 벌일 때에는 무슨 독립 투쟁에라도 나선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라는 말만 난무하지 실상 수많은 ‘우리’가 쪼개져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기억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 것 같다. 월드컵에 매달리는 뜨거운 열기도 그런 상실감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한쪽으로 쏠린 5·31지방선거의 결과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각자의 정치적 취향에 관계없이 많은 국민은 우울하고 심란할 뿐이다. 나라의 앞날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과 그들과 한마음이 되어야 할 국민 사이에 갈라선 마음이, 도무지 감추고 자시고 할 수 없을 만큼 노골적으로 바닥을 드러낸 현실에 등이 오싹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책임질 사람은 너무도 태연한 척한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도 조만간 과거사가 될 것이다.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는 반성 없이 함부로 쓰고 있는 역사야말로 청산의 대상이 아닐까. 날 잡아 청산의 그날을 기다릴 것도 없이 순간순간 국민의 뇌리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잘못이 있는데 고치지 않으면 이를 진정한 잘못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고미석 문화부 차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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