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1시경. 사찰생태연구소(대표 김재일)가 주최한 제1회 사찰생태기행 참가자 30여명은 서울에서 4시간여 동안 버스로 달려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청량사 입구에 내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며 사찰 주위의 생태를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숲 해설 교육을 받아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을 비롯해 환경단체 회원들, 일반 불교신자, 단순히 생태에 관심 있는 초보자 등으로 구성된 일행은 식물과 곤충·조류 2개 팀으로 나뉘어 카메라와 필기도구를 든 채 산길을 걸으며 식물이나 곤충의 사진을 찍고 필기도 하며 생태관찰과 조사를 했다.
이 행사는 사찰생태연구소가 '불교환경 의제 21'의 실천사업으로 각 사찰의 자연생태를 모니터링해 해당 사찰에 맞는 자연체험 프로그램을 개발 활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다. 사찰생태연구소는 2002년 3월 사찰의 생태를 지키기 위해 설립됐으며 '108 사찰 생태기록 남기기' 등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전국 57개 사찰의 생태조사를 마쳤다. (02-745-5812, 3. http://cafe.daum.net/templeeco)
이날 식물팀을 이끈 숲 해설가 정미경 씨는 초보자들에게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일일이 설명하랴, 진귀한 식물들을 찾아내랴 이마에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정 씨는 "물푸레나무는 아주 단단해 옛날에는 곤장을, 요즘에는 야구방망이를 만드는 데 쓰인다"며 "소나무는 햇볕을 좋아해 능선 주위에, 단풍나무는 물을 좋아해 계곡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물팀은 등산로 입구에서는 굴참나무 군락을, 좀더 올라가서는 신갈나무군락을 찾아내기도 했다.
서산 부석사의 생태해설사인 원우 스님이 이끈 곤충·조류 팀은 등산로 입구 개울에서 버들치 같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물까마귀를 발견한 것을 비롯해 박새 쇠딱따구리 검은등뻐꾸기 등 새 20여 종과 나비 15종을 관찰했다.
2시간여 동안의 산행 끝에 참가자들은 우뚝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들 속에 안겨 있는 듯 자리 잡은 청량사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다시 이 절의 암자인 응진전 쪽으로 생태조사를 다녀왔다.
이어 저녁 어스름이 지기 시작할 때 5층 석탑 앞에 빙 둘러앉은 참가자들은 김재일 대표로부터 '생태시각으로 본 사찰문화'를 주제로 한 강연을 들었다. 김 대표는 "옛날 스님들은 썩은 나무는 불을 땔 때 사용하지 않았다. 그 안에 벌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짚신을 만들 때도 벌레들이 많이 다니는 계절에는 헐겁게 매어 벌레들이 밟혀 죽지 않게 했다"며 불교의 전통적 생태관을 소개했다.
절 뒤에 우뚝 솟은 연화봉 위로 반달이 떠올라 석탑아래를 비출 때쯤 강연은 끝이 나고 모두들 방으로 들어가 팀별로 생태지도를 작성한 뒤 밤 10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새벽 4시 도량석 소리에 모두들 간신히 일어나 법당에서 예불을 드렸다. 산 속의 곤충과 새들도 도량석 소리에 잠을 깨는 듯했다. 조용하던 산속에 갑자기 온갖 새와 벌레들이 자연의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예불시간 내내 들리던 아름다운 울음의 새는 큰유리새라고 나중에 원우 스님이 일러주었다. 아침 공양 후 지난밤 작성한 생태지도를 팀별로 발표한 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일행은 영주 소백산의 희방사로 가 그곳에서 곤충전문가 박해철 박사의 안내로 희방계곡에서 곤충을 중심으로 생태를 조사했다. 여기서 곤충으로서는 서울 근교에서 볼 수 없는 꽃벌들을, 식물로서는 함박꽃나무 노각나무 등을 찾아냈다.
참가자들은 서울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번 생태기행의 소감을 다양하게 쏟아냈다. "흔히 볼 수 있었던 식물 곤충이었지만 이름 몰랐던 것을 알게 돼 기쁘다" "인간은 식물 곤충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청량사 법당의 마루를 그대로 놔두지 않고 화학섬유 카펫을 깔아 눈에 거슬렸다" "희방계곡에 시멘트 길을 깔아 생태 훼손이 심할 것 같다" 등.
사찰생태연구소는 지난달 오대산 월정사에서 실시했던 생태조사결과와 이번 청량사 희방사 생태조사결과를 다음달 중에 보고서로 펴내 조계종 총무원과 해당 사찰에 전달할 예정이다.
윤정국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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