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의 회전판은 어지럽고
간단없는 생의 행군은 코뿔소처럼 달리며 꿈
꾸었겠다
나무늘보처럼 /
세상 모든 느림을 불러 아주 천천히 /
늘보처럼 나무에서 졸린 눈 뜨고 /
늘보처럼 나뭇잎이나 질겅이고 /
내가 밥숟갈을 떠 넣으며 그에게 두 번 눈 흘
기고도 모기를 철썩 때려잡는 사이 /
화면 속 나무늘보는 / 아직도 이 쪽으로 고개
가 돌아오는 중이다 /
무심한 저 얼굴 한 송이 좀 봐 / 꽃송이 같지 /
늘보처럼 돌아보다 / 길도 잃고 시간표도 잊
고 / 이제사 순금 꽃대를 뽑아 올리는 /
내 금화란도 좀 봐봐
늘보처럼 엉금엉금 사랑하다
가장 늦게 우리 돌아선다면 생강꽃 같은 이
별, 참 곱겠다
나무늘보처럼 그렇게
―시집 ‘전갈의 땅’(천년의시작) 중에서》
포유류 중에 가장 빠른 치타는 시속 110km, 이름난 느림보 나무늘보는 시속 900m로 이동한다고 한다. 벌새의 한 종류는 1초에 55회나 날개를 펄럭이지만 뉴질랜드의 새, 키위는 아예 날개가 없다. ‘느림’이 미덕이라 해서 모두가 늘보처럼 살아야 한다면 갑갑해서 바위에 머리를 들이받는 짐승도 있으리라. 한 나절 걸려 봉오리를 열고 나오는 꽃잎의 속도가 아름다운 것처럼, 눈 깜빡할 새에 물을 차고 오르는 제비의 속도도 아름답다. 문제는 자기 심장의 속도일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제 맥박보다 빠른 기계문명의 심장으로 질주하고 있다. 속도로 속도를 지우며 저 홀로 속도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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