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64>遼東豕(요동시)

  • 입력 2006년 6월 9일 03시 04분


‘遼東(요동)’은 중국의 요동 지역을 말하고, ‘豕(시)’는 ‘돼지’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遼東豕(요동시)’는 ‘요동 땅의 돼지’라는 뜻이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서 나왔다.

요동(遼東) 지역에 돼지를 기르는 농부가 있었다. 그가 기르는 돼지는 모두 검은 색의 돼지였으며, 그 동네의 돼지도 모두 검은 색의 돼지였다. 하루는 그 검은 돼지가 흰색의 새끼를 낳았다. 그 농부는 대단히 상서로운 징조라고 여기며 이 흰 돼지를 천자에게 바치면 큰 벼슬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이리하여 그 농부는 흰 돼지를 소중히 안고 길을 떠났다. 어느 곳에 이르러 그 농부는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타게 되었다. 배에서도 그 농부는 이 흰 돼지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함께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그 사연을 물었다. 그 농부는 이 귀한 흰 돼지를 천자에게 바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껄껄 웃었다. 그 농부는 사람들이 왜 웃는지를 몰랐다. 배가 강을 건너자 그 농부는 배에서 내렸다. 그곳은 강동 땅이었다. 그 농부는 동네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동네의 돼지는 모두 흰색이었다. 그 농부는 비로소 배에 탔던 사람들이 웃었던 이유를 알았다. 그 농부는 고개를 숙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위의 이야기에서 나온 ‘遼東豕’라는 말은 자신의 처지나 자신의 생각이 객관적으로 어떠한가를 항상 살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가끔 남이 보면 당연하거나 보편적인 일을 멋모르고 자랑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자랑거리가 있어도 꾹 참아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는 객관적으로는 자랑거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화가 나는 일을 참아 보는 일은 더욱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는 객관적으로는 화를 낼 일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끔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더 넓게 세상을 보면 그 불행은 실제로 불행한 것이 아닌 경우가 있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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