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줄에 묶인 채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수인(囚人).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포르투갈의 주제 사라마구가 이 동굴의 비유를 소설로 옮겼다.
작은 마을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소박하게 살아가던 도공은 언제부턴가 살길이 막막해진다. ‘센터’라는 곳에서 도자기 그릇보다 플라스틱 그릇이 편리하다며 간섭하고 나선 것. ‘센터’는 병원 기업 쇼핑센터 놀이공원 주거 공간 등 온갖 편의시설을 갖춘 곳이다. 먹고살기 위해 센터의 경비원으로 취직한 도공은 어느 날 센터를 돌다가 ‘동굴’을 발견한다. 놀랍게도 그곳엔 플라톤의 비유가 그대로 재현돼 있는 게 아닌가.
소설은 철학적인 비유도 팔아먹는 자본주의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던진다. “(동굴의) 그 사람들은 우리다”라는 주인공의 외침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재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라는 성찰을 하게 한다. 사라마구는 단락을 거의 바꾸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며 오로지 마침표와 쉼표만으로 문장을 이어간다.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그만큼 의미가 있다. 원제 ‘A Caverna’(2000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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