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바람피운 당신, 부숴 버릴거야…‘위험한 열정 질투’

  • 입력 2006년 6월 10일 03시 00분


◇ 위험한 열정 질투/데이비드 버스 지음·이상원 옮김/360쪽·1만2000원·추수밭

남자의 정자(精子)는 생김새가 똑같지는 않다. 대부분은 원추형 머리에 힘차게 움직이는 꼬리를 갖고 있다. 이른바 ‘마크 스피츠’형. 마치 수영 선수처럼 난자를 향해 날쌔게 헤엄쳐 간다.

돌돌 말린 꼬리를 가진 것도 있다. 이것들은 난자에 이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여성의 생식기 안에 두 남자에게서 나온 정자들이 섞여 있으면 ‘뿌리가 다른’ 정자를 껴안고 순식간에 함께 죽어 버린다. 정자 세계의 ‘가미카제’다.

남성들은 다음 세대에 자신의 유전자를 전하기 위해 여성의 생식기 내에서 오랫동안 전투를 벌여 왔다. ‘정자 전쟁’은 두 남자의 정액이 같은 시기에 여성의 생식기에 머물러 왔음을 고발(?)하는 진화론적인 증거다.

여성들이 본래부터 ‘1부 1처제’의 순결한 본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남성들이 이렇게까지 고투를 벌일 필요가 있었을까?

여성의 질 벽에는 남성의 정자를 저장했다가 며칠 후에 난자를 향해 내보내는 수백 개의 작은 주머니가 있다. 여성은 남자의 정자를 길게는 7일까지 저장한다. 왜? 더 멋진 남성에게서 더 좋은 유전자를 얻기 위해서다. 최근 실험 결과에 따르면 단지 셔츠 냄새만으로도 유혹하고 싶은 이상형을 가려낼 수 있는 게 여성들이다.

‘엄마인 건 확실하지만, 아빠는 글쎄?(Mama’s baby, papa’s maybe)’란 말은 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고대의 남성들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암컷의 몸’에서 수정이 이루어지는 탓에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 전달을 100% 장담할 수 없었던 거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성의 질투는 사랑하는 여인이 부정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맞서기 위한 진화적 반응”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인간의 두 가지 위험한 열정, 외도의 욕망과 질투의 감정에 대해 진화심리학의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다. 세계 각국에서 실시한 실험과 설문조사를 통해 이 매혹적이면서도 끔찍한 감정들이 인간의 짝짓기 전략에 개입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파헤친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성적 배신과 이에 맞선 ‘질투의 전략’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진화의 정글을 탐험하며 “우리 안의 길들여지지 않은 악마를 너무 모질게만 대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면 사랑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질투하지 않는 사람은 질투심 많은 경쟁자에게 밀려 진화에서 도태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이 되지 못했다. 질투란 곧 적응이며, 생존과 생식이라는 진화의 가느다란 병목을 통과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렇게 진화한 질투는 첫 번째 방어책으로 경계를, 최후의 방어책으로 폭력을 유발한다. 양날을 가진 방어 메커니즘인 셈이다. 질투가 극단적으로 흐르면 살인을 부른다. 미국 내 전체 살인 사건의 13%는 배우자 살인이고, 그 주된 원인은 질투이다.

하지만 질투는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위기에 닥친 애정 관계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그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미묘한 신호를 포착해 냄으로써 진짜로 닥칠 배신에 대처하도록 해 준다. 배우자의 성적 무관심은 단지 과로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너무 점잖은 척 이 ‘내적 속삭임’을 무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의부증이나 의처증으로 정신 상담을 받은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결국 ‘외도하는 배우자’에게서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원제 ‘The Dangerous Passion’(2000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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