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수진]공감 못 얻는 뮤지컬協의 日극단 성토

  • 입력 2006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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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연계를 ‘정벌’하고 대대손손 이 땅을 공연 식민지로 고착화하려는 시키(四季)의 음모.” “국내 첫 뮤지컬 전용극장을 (시키에) 통째로 넘긴 롯데는 우리 공연계의 고혈을 뽑아 (시키의) 배를 불리는 친일 앞잡이….”

한국뮤지컬협회가 8일 발표한 성명서는 위암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을 방불케 했다. 이 성명은 215억 원짜리 초대형 뮤지컬 ‘라이온 킹’을 10월 말부터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용극장인 ‘샤롯데 극장’ 개관작으로 무기한 공연한다는 일본 최대 극단 시키의 발표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다.

뮤지컬협회는 시키가 관람료를 국내 뮤지컬보다 30% 싸게 책정한 것에 대해 “우리 공연단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뒤 시장을 독점하려는 ‘독약’”이라고 주장했다. 또 협회는 “롯데 상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한편 ‘라이온 킹’ 등 시키의 작품에 참가하는 한국 배우나 스태프는 향후 협회 소속 단체가 제작하는 작품에서 가차 없이 배제할 것”이라고 ‘실력 행사’를 결의했다.

하지만 성명서가 나온 뒤 인터넷에는 “전형적인 집단 이기주의 행태”, “공연 한 편 보려면 허리가 휜다”, “결국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등 뮤지컬 팬들의 비난 글이 잇따르고 있다. 누리꾼들은 국내 공연단체 간의 과당 경쟁으로 올려놓은 해외 로열티, 할인을 전제로 높게 책정하는 거품 가격 등 우리 뮤지컬계의 잘못된 관행도 성토했다.

뮤지컬계의 절박한 위기의식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벤츠를 국산차보다 30% 싸게 파는 셈”이라는 한 뮤지컬 프로듀서의 하소연처럼, 일본에 전용극장만 9개가 있는 막강한 자본력의 시키와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용극장마저 시키에 ‘뺏긴’ 한국 뮤지컬계는 분명 ‘불공정 경쟁’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A4 용지 4장 분량의 긴 성명서를 읽는 내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개탄을 넘어 공분을 금치 못한다”는 감정적인 대응만 있을 뿐 진지한 자기반성과 치밀한 대책은 찾아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민족 감정’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이제까지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 한국 뮤지컬에 날개를 달아 준 팬들에게서도 동정표를 얻기 힘들다. 관객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작품의 국적이 아닌 합리적인 가격의 좋은 뮤지컬이니까. 관객은 이미 충분히 현명해졌다.

강수진 문화부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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