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만난 그는 시집 제목 얘기부터 했다. “작고 섬세한 것부터 눈 돌려야 할 시인이 우주를 논한다고…, 그것도 우주가 죽고 사는 문제를 시로 쓴다고…, 제목부터 너무 큰 얘기를 한다고 다들 말렸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시인의 ‘작은’ 개인사에서 비롯됐다. ‘우주’는 30년 전 세상을 떠난 부친의 이름이다. “양조장 하다 문 닫으신 뒤로는 가정을 돌보질 않으셨거든요. 아버지 원망을 많이 했는데, 몇 년 전 남편이 친정아버지 제사를 앞두고 ‘우주 돌아가셨다!’라고 하는 거예요. 제사를 꺼리는 남편이 한마디 한 건데,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 같더라고요.”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이 실감나면서, 생전에 가족과 살뜰하게 지내지 못한 아버지의 고독을 헤아리게 됐다고 한다.
‘무더위와 허기를 스무 날째 버티시더니…안심한 듯 칠월 초사흘 아침에 밥 점(點)을 찍으셨지요/그곳이 도대체 어디이기에 술과 상처보다 밥을/더 귀히 여기는지 여쭙지 못했습니다’(‘우주 돌아가셨다2’)
아버지가 있는 ‘그곳’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안(彼岸)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등단을 하고, 박사 학위를 받고…. 시골 소녀가 생각지도 못했던 인생의 횡재가 계속됐어요. 그때마다 신나기는커녕 마음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신의 존재를 생각하게 됐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속에서 신이 죽고, 살고….”
시집에는 그런 사유가 담긴 시가 적지 않다. ‘영구암 극락전에 엎드려서/빛의 대양(大洋)의 나무뿌리의 해탈/그 찰나를/가져가기 위해 피리 속에 감췄는데’(‘극락 가는 길’) ‘그리고 따뜻한/순간들이 알고 보면 몽땅/누군가의 처절한 힘들이 낳은/것이라면’(‘너무 늦은 질문’)
종교를 넘나드는 시편들에 대해 박 씨는 “내 시의 신은 하느님도 부처님도 아니고 내가 죽이고 살리기를 반복한 신”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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