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어쩌면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저녁때가 되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친구들과 놀다가 ‘얘야, 밥 먹어라’ 하고 엄마가 부르면 달려가는 그곳이 아닐까”라고 말씀하신 본당 신부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면서, 나는 죽음에 대해 설명하기가 쉬워졌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친구들과 뛰어다니면서 놀다가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어떤 친구들은 놀던 장난감을 잘 챙겨서 가고, 어떤 친구들은 다시는 놀지 않을 것처럼 모두 다 팽개치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무작정 달려간다. 어쩌면 장난감을 챙겨 가지 않아서 꾸중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기만 한다.
천상병 시인도 죽음을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것’으로 표현했지만,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든다. 실컷 잘 놀다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가는 친구들은 갑자기 사고나 천재지변으로 생을 달리하는 사람들로, 또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놀던 것을 다 정리하는 친구들은 수를 다 누리고 연세가 드셨거나, 질병 등으로 인해 천천히 죽음을 향해서 한 걸음씩 다가서는 사람들로 이해된다.
앞으로 내가 놀던 것을 잘 정리할 수 있을지, 목소리를 듣고는 그대로 달려갈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내가 그곳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게 주어진 삶의 끄트머리에서 그래도 목소리를 듣고 웃으면서 갈 수 있으려면 ‘지금’이라는 시간을 알차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공마리아 수녀·전주 서신동성당 근무 전교가르멜수녀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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