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죽음이란 무엇일까

  • 입력 2006년 6월 15일 03시 00분


요즘은 납골당에 모시는 분이 많아 흙이불을 덮는 분들을 자주 뵐 수는 없지만, 죽음이라는 강을 건너 저편으로 가시는 분들을 보면서 ‘죽음이 무엇일까’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사춘기 때 겪어야만 했던 아버지의 죽음, 한 사람의 죽음이 남아 있는 이들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주는지를 처절하게 느꼈던 외할머니의 죽음 등. 물론 내 신앙 안에서 이분들은 하느님을 믿으면서 착하게 살다가 돌아가셨기에 하늘나라에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음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죽음 저편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고 믿지만,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분들에게 죽음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죽음은 어쩌면 우리들이 어린 시절에 저녁때가 되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친구들과 놀다가 ‘얘야, 밥 먹어라’ 하고 엄마가 부르면 달려가는 그곳이 아닐까”라고 말씀하신 본당 신부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면서, 나는 죽음에 대해 설명하기가 쉬워졌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친구들과 뛰어다니면서 놀다가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면, 어떤 친구들은 놀던 장난감을 잘 챙겨서 가고, 어떤 친구들은 다시는 놀지 않을 것처럼 모두 다 팽개치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무작정 달려간다. 어쩌면 장난감을 챙겨 가지 않아서 꾸중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가기만 한다.

천상병 시인도 죽음을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것’으로 표현했지만, 나 역시 그런 생각이 든다. 실컷 잘 놀다가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가는 친구들은 갑자기 사고나 천재지변으로 생을 달리하는 사람들로, 또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놀던 것을 다 정리하는 친구들은 수를 다 누리고 연세가 드셨거나, 질병 등으로 인해 천천히 죽음을 향해서 한 걸음씩 다가서는 사람들로 이해된다.

앞으로 내가 놀던 것을 잘 정리할 수 있을지, 목소리를 듣고는 그대로 달려갈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내가 그곳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게 주어진 삶의 끄트머리에서 그래도 목소리를 듣고 웃으면서 갈 수 있으려면 ‘지금’이라는 시간을 알차게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공마리아 수녀·전주 서신동성당 근무 전교가르멜수녀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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