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거미 한 마리가
연방 흔들리면서도
그물집에 말갛게 걸린 노을을
조금씩 핥아대고 있었지요
머리도 가슴도 배도 모두 작아서
차라리 점 하나 같은 거미가
칙칙한 것들을 이제 털어내자고
꼭 쥔 내 몽당빗자루 떨림도 모르고
따스한 제 모습 하나 여미고 있었지요
언뜻 보면 별것도 아닌 것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고요한 풍경 하나 걸러내고 있었지요
살아오면서 내내
뜨거움으로 가득 차
그을고 가시 박힌 내 마음에도 어느새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노을이
말간 거미줄을 치고 있었지요
―시집 ‘상처의 집’(실천문학사) 중에서
냅다 몽당빗자루로 거미줄을 털어내려다가 그만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처럼 멈추고 말았군요. 물방울 하나하나마다 서녘 하늘이 다 담겨 있지요? 가느다란 다리로 천 폭 노을을 툭툭 털어버리는 거미의 위세, 경탄할 만하고말고요. 세상엔 얼마나 ‘언뜻 보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고요한 풍경’을 걸러내는 것일까요. ‘찬찬히’ 보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별것’들 천지인가요. 그나저나 빨랫줄과 바지랑대 사이에 친 저 거미줄과 거미를 대체 어쩌죠?
―시인 반 칠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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