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대행사 룩미디어코리아의 찰스 써월(33) 대표는 이 한마디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호주 출신으로 한국에서 생활한 지 6년 된 그는 ‘베스파 라이더’를 찾아보기 어려워 아쉬웠다.
그는 10년째 베스파를 타고 있다.
베스파는 이탈리아 피아지오 사의 스쿠터.》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공주 역의 오드리 헵번이 거리를 누빌 때 탄 스쿠터가 베스파다. 이 스쿠터는 300만∼600만 원으로 보통 스쿠터에 비해 1.5∼2배 비싸다.
최근 한국에도 동호회인 ‘베스파 클럽 코리아’가 발족했다. 회원 100여 명의 이 모임은 이달 초 20여 명이 첫 라이딩 행사를 열었다. 베스파 전문 매장도 지난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문을 열었다.
써월 대표는 한국어가 서툴렀지만 곧장 동호회에 가입했고 라이딩에도 참가했다. 이 행사에 참가한 베스파 라이더는 대부분 30대 이상의 전문직 종사자. 이들에겐 조그만 스쿠터보다 묵직한 모터사이클이 어울릴 법하다. 그럼에도 베스파를 타는 이유가 무엇일까.
○ 골목길 누비며 다양한 표정 봐
베스파 라이더들은 한결같이 “도시의 일상을 관조하는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크기도 작고 시속도 최고 87∼100km여서 도시의 풍경을 보는 데 안성맞춤이다. 모터사이클이 질주의 재미가 있다면 베스파는 유유자적의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써월 대표는 “시간만 나면 베스파로 도심 주택가 재래시장 대학가를 누비며 한국인의 삶을 살핀다”며 “복잡하거나 좁은 길도 다닐 수 있고 세우기도 쉬워 일상을 관찰하는 데 좋다”고 말했다.
카페 ‘하루에’의 주동률(50) 사장은 최근 베스파에 매료됐다. 10여 년간 가와사키 모터사이클을 타 온 그는 “베스파로는 골목길을 누비며 노상 탁자에서 한잔하는 남자나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이 등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 자유로운 스타일
‘로마의 휴일’에서 작은 새처럼 자유로운 헵번. 베스파 라이딩은 마치 그 헵번의 표정처럼 자유롭다.
할리 데이비슨의 라이더들은 가죽 잠바 등 강한 이미지의 디자인과 액세서리를 착용하지만 베스파 라이더들은 ‘드레스 코드’를 정하지 않는다.
영화에 나온 베스파 라이더들의 옷차림도 각각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헵번과 그레고리 펙은 각각 긴 치마와 양복을 입었고, ‘인터프리터’의 니콜 키드먼은 반코트, ‘리플리’의 맷 데이먼은 청바지와 콤비 차림이었다. ‘나를 책임져, 알피’에서 주드 로도 양복을 입고 베스파를 탔다.
주 사장은 “할리 데이비슨 라이더는 옷차림부터 다르지만 베스파는 어떤 스타일로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서일대 연극과 신동인(36) 교수는 1999년부터 할리 데이비슨을 즐겼으나 2년 전 편한 라이딩을 위해 베스파를 장만했다.
출퇴근도 자주 베스파로 하는 신 교수는 “할리는 옷과 액세서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소리도 크기 때문에 공간이나 시간의 제약이 많다”며 “할리가 멀리 있는 까다로운 애인이라면 베스파는 언제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와이프”라고 말했다.
○ 변하지 않아 좋다
이들은 스쿠터 중 베스파에 매료된 이유 중 하나로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을 꼽는다. 베스파는 동그란 라이트와 사이드 미러, 네모 꼴의 앞쪽 프레임 등 클래식 앤드 심플 디자인을 60여 년간 유지하고 있다.
스쿠터들은 보통 플라스틱 프레임으로 만들지만, 베스파는 강철 프레임이다. 색상도 원색으로 단순하다. 베스파는 이탈리아어로 ‘말벌’인데, 이 스쿠터도 위에서 보면 벌처럼 생겼다.
디자인 꾸떽의 정규태(43) 대표는 “새로운 스타일을 선호하는 시대에 전통 스타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임을 강조하기 위해 베스파를 탄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박성철(30) 씨는 베스파를 타지 않을 땐 스튜디오 쇼윈도에 전시한다. 그는 “베스파의 디자인은 변하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며 “고객과 변함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베스파를 쇼윈도에 세워 둔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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