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여자만 얼굴 가꾸나요?”…날마다 거울 보는 남자

  • 입력 2006년 6월 16일 03시 05분


신중식(왼쪽), 이경훈 부부가 화장대 앞에서 피부 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신중식(왼쪽), 이경훈 부부가 화장대 앞에서 피부 관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영욱 기자
《‘CJ홈쇼핑’ 카탈로그 상품기획 부문을 총괄하는 신중식(38) 팀장. 그는 지난해 2월부터 매일 오전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 공간은 이전에는 아내(이경훈 씨·35)만의 것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성스럽게 화장하는 아내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의 몸에서는 샤워 젤의 싱그러운 과일향이 풍긴다. 샴푸는 모발에 영양을 공급하는 제품을 쓴다. 화장대에는 멘톨 향의 비타민 C 성분이 포함된 셰이빙 폼, 한방 성분의 스킨과 로션, 자극이 덜한 헤어용 왁스, 아이 크림, 지나치게 끈적거리지 않는 스프레이형 자외선 차단제, 영양 크림이 놓여 있다.》

○ 아내, 사라지다?

3년 전 겨울 그는 당혹스러운 일을 경험했다.

토요일 휴무였던 그는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아내와 아들을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그를 본 아내는 알 수 없는 손짓을 한 뒤 아들의 손을 잡고 부리나케 사라졌다. 그는 계속 이름을 부르며 좇아갔고, 앞의 두 사람은 그럴수록 더 발걸음을 재촉해 사람 사이로 사라졌다.

백화점 5층. 세 사람이 드디어 만났다. 얼굴이 붉어진 그가 “왜 자꾸 도망가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아까 손짓이 여기서 만나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화점에 오는데 남방에 슬리퍼, 자다 나온 듯한 부스스한 머리로 와야겠느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외출했던 두 사람은 깔끔한 정장 차림인 반면 자신은 배가 불록 나온, ‘망가진’ 40대처럼 보였다. 결혼 9년째에 체중이 10kg이나 늘어났다. 어디서 본 듯한 ‘동네 아저씨’ 스타일이었다.

화가 나고 씁쓸하고 창피했다.

○ 남편, 이를 악물다

“아무리 장난이라고 해도…. 속으로 이를 악물었습니다. 밖에서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자신도 가꿔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신 팀장)

옆에 있던 아내가 억울하다는 듯 응수했다.

“정말 장난이었다니까 아직도 그래. 그때 배가 나오면서 지방간 수치도 높게 나오고 건강 상태가 위험 수준이었어요. 말로 해서는 안 되고 강한 자극을 주고 싶었어요.”

‘백화점 사건’ 이후 그는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11kg를 줄였다.

하지만 체중이 줄자 피부가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 가족의 건강관리를 위해 스포츠 마사지 자격증까지 딴 아내는 ‘매일의 힘’을 믿으라는 조언을 했다.

운동이나 식사 조절도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매일 챙겨야 하는 피부 관리는 더 성가셨다.

아침에는 충분한 휴식과 피부 관리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차가운 물로 얼굴만 씻는다. 스킨과 로션을 바른 뒤 왁스로 머리를 매만진다. 양에 비해 가격이 비싼 아이 크림을 손에 조금 묻혀 눈 주변에 바른다. 요즘 눈가의 잔주름과 다크 서클(눈 밑 그늘)에 부쩍 신경이 쓰인다. 요즘처럼 햇볕이 강할 때에는 가벼운 자외선 차단제도 필수다.

저녁 무렵에는 클렌징 폼과 보습제, 각질제거제도 사용한다. 자외선이 강했거나 야외 활동이 많았으면 팩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주말에는 아내가 해 주는 경락 마사지와 두피 마사지를 받았다. 1개월에 한 번 부부 동반으로 아내가 이용하던 피부 관리 센터에도 갔다.

커피를 끊고 녹차를 마셨다. 체지방 분해와 피부에 좋아 1석 2조였다. 아침 식사도 토마토와 양배추, 생두부, 감자, 고구마 등 채식 위주로 바꾸었다.

○ 남성의 경쟁력

과거에는 옷이 좀 튀거나 피부 관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을 보면 유난을 떠는 사람, 심지어 ‘푼수’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 통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자신의 전문성뿐 아니라 ‘남성의 경쟁력’은 건강, 외모, 매너의 3박자를 갖춰야 완성됩니다.”

꾸준하게 거르지 않는 운동과 피부 관리 덕분에 주변에서 “젊어졌다” “30대 초반처럼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실제 업무에서도 그의 달라진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2000여 개의 상품 아이템을 다루는데 패션이나 언더웨어 전문가를 만날 때는 분위기가 잘 ‘잡히는’ 편입니다. 깔끔하고 단정하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대화를 풀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호감이 가는 헤어스타일이나 외모를 만드는 것은 그에게 자연스러운 ‘비즈니스 에티켓’이 됐다.

○ 80점과 95점

그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드러나는 건강미가 내적인 자신감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전에는 옷이 좀 요란하다 싶으면 고개를 저었지만 이제는 골반 바지까지 소화해 낸다. 피부의 모공이 작아지고 얼굴 윤곽도 뚜렷해졌다.

남편을 20대의 모습으로 돌려놓은 1등 공신으로 자부하는 이 씨는 “경락 마사지는 힘든 편인데 남편이 효과를 체험했기 때문에 아파도 잘 참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남편의 요즘 변화에 긍정적이다.

“남편이 건강하고 젊어지는데 왜 불안하죠? 제가 일방적으로 남편을 도와주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 이후 지금까지 매일 남편이 준비한 아침을 먹는 아내는 드물 걸요?”

흥미로운 것은 아내가 남편의 외모 경쟁력에 훨씬 후한 점수를 줬다는 점이다. 아내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95점이었지만 남편의 평가는 80점이었다.

○ 가족을 위해 미(美)를 관리

1월 남성화장품 브랜드 ‘오딧세이’와 남성 패션 잡지 ‘GQ’가 실시한 남성화장품 사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2%가 마스크 팩으로 영양분을 공급한다고 답변했다. 남성들은 자외선 차단제(42%), 각질제거제(39%), 미백제품(32%)을 각각 이용한다고 밝혔다. 피부 톤을 교정하기 위한 컬러 로션이나 생기 있는 입술을 연출하기 위해 립밤을 쓰는 남성도 늘고 있다.

아직 남성들에게 화장 또는 메이크업이라는 말은 부담스러운 단어다. 하지만 마초의 남성상에서 벗어나 색조 화장 이전 단계의 피부 관리를 하는 남성은 늘고 있다. 남성의 이런 노력은 미의 추구보다 사회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이미지 변화에 가깝다.

신 팀장도 “나의 노력은 다른 남성과 비교할 때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평범한 것”이라며 “ 개인 건강과 가족, 일을 위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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