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10과 2분의1장으로 쓴 세계역사’

  • 입력 2006년 6월 17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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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과 2분의 1장으로 쓴 세계 역사/줄리언 반스 지음·신재실/448쪽·9800원·열린책들

‘노아의 방주’는 세상이 심판받고 거듭나게 된 이야기로 성경에 기록됐다. 성경 넉 장에 걸쳐서 의롭고 현명하고 신을 두려워한 사람으로 묘사된 노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가 다른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다. ‘음주벽이 있는 신경질적인 악당’이었다는 것. 증인은 방주에 몰래 탄 나무좀이었다.

줄리언 반스는 현대 영국문학을 이끌어 온 소설가다. ‘10과 2분의 1장으로 쓴 세계 역사’는 27개국에 번역됐으며 반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책의 제목은 ‘역사’이고 형식은 ‘소설’이지만 역사와 소설 양쪽 모두에 대한 독자의 선입관을 멋지게 배반한다. 노아의 방주, 큰 물고기에게 삼켜진 요나 등 서양 정신사의 근원이 되는 성경 속 사건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등 실제 사건들, 과거의 한 시기를 배경으로 기이한 상상력이 입혀진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렇지만 어느 사건 하나 이제껏 우리가 알았던 역사가 아니다.

‘노아의 방주’만 해도 나무좀이 보기에는 방주가 성스러운 공간이 아니었다. “당신이라면 한 번 뛰면 닿을 거리에 치타와 영양을 함께 실었겠습니까? 어느 정도의 보안 조치는 불가피했습니다. 가장 높은 곳의 누군가는 정보 수집에 혈안이었고, 스파이가 되는 데 동의한 자도 있었습니다. 때때로 당국자에게 고자질하는 일이 성행했습니다.” 교배종이라는 이유로 죽임당한 동물도 있었다. 유니콘, 히포그리프 같은 것들이다(그래서 그들은 전설 속 동물이 돼버렸다).

역사를 유머러스하게 비틀어 꼬집는 작가의 능력은 곳곳에서 빛난다. 여자와 아이들만 살아남았다는 타이타닉호 사고에서 실은 한 남자가 여장(女裝)을 하고 구명보트에 타서 생존했다는 이야기는 인간의 비겁함을 허탈하게 드러낸다. 16세기 프랑스에서 좀 벌레가 교회의 제단을 좀먹었다는 것 때문에 신성모독죄로 기소됐다는 이야기는 종교에 어이없이 경도된 중세시대, 그리고 종교를 대신하는 현대의 수많은 우상에 경도된 요즘 사람들을 빗대어 비꼬는 것이다.

책의 이야기 대부분은 방주와 유람선, 함대, 뗏목 등 바다 위 작은 공간에서 벌어진다. 역사라는 바다는, 그 위에서 떠도는 인간의 눈으로 가늠하기에는 너무 넓다는 것을 짚어주는 대목이다. 이 재치 있는 소설은 독자들의 찬사뿐만 아니라 동료 소설가들에게서도 ‘우리들의 아슬아슬한 역사를 두루 여행했으며 멋진 시간을 가졌다’(네이딘 고디머), ‘그가 내놓은 것은 주어진 것의 전복으로서의 소설’(살만 루슈디) 등의 호평을 받았다. 원제 ‘A History of the World in 10 1/2 Chapters’(1989).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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