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그레이트 디자이너 10’

  • 입력 2006년 6월 17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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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프 스타크의 ‘파리채’(1998년).
필리프 스타크의 ‘파리채’(1998년).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1999년 건축한 독일의 전차 정류장. 원뿔과 육면체, 노란색과 검은색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사진 제공 길벗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1999년 건축한 독일의 전차 정류장. 원뿔과 육면체, 노란색과 검은색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사진 제공 길벗
◇그레이트 디자이너 10/최경원 지음/368쪽·1만6000원·길벗

유럽에선 지나가는 아줌마도 알아본다는 이 시대 디자이너를 대표하는 아이콘, 필리프 스타크.

산처럼 튀어나온 배, 금방 자고 일어난 듯한 곱슬머리, 거구가 힘겨운 듯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이 ‘디자인 안 된’ 몸을 지닌 스타크의 디자인을 이끄는 힘은 유머다. 그의 디자인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스타크는 ‘물질’이 아니라 ‘꿈’을 지향한다. 다른 첨단 디자인들처럼 차가운 느낌이 없다. 유행에 대한 강박관념도 없다. 날이 선 세련됨으로 사람을 긴장시키지도 않는다. “화려한 디자인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만큼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스타크가 원한 것은 디자인의 영생(永生)이었다.

이 책은 20세기 디자인사를 써 내려간 거장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좇는다. 20세기 최고의 건축을 남기고 자살의 의혹 속에 사라져버린 르 코르뷔지에, 90세의 나이에도 싱싱한 감각의 디자인을 보여 주는 루이지 콜라니, 포스트모던 디자인을 선도했던 알레산드로 멘디니….

디자인은 예술인가? 아니면 대중적이어야 하는가? 저자는 디자이너들의 영원한 화두를 끄집어내며 “디자인의 가치는 그 실존적인 감동에 있다”고 강조한다. 디자인은 단지 산업의 부산물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땀과 헌신으로 이루어져 왔다며, 그 위대한 성취 이면에 가려진 들끓는 열정을 전한다. 코코 샤넬이야말로 그러한 삶을 살아갔다.

현대적인 세련미, 여성의 우아함, 도도한 귀족성…. 샤넬의 패션은 근 한 세기 동안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검은색은 샤넬의 상징이었다. 그는 검은색에 대한 상식에 역주행하면서 ‘샤넬스러운’ 패션의 문법을 새롭게 만들어 냈다. 그는 시대를 디자인했으니 현대 의상의 기본 틀은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그런 그도 사랑 앞에선 한 여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나치 장교에게 마음을 뺏겨 스파이 활동에 가담했고, 전쟁이 끝나자 스위스로 도피한다. 그가 패션계에 복귀한 게 1954년. 71세 때였다.

그는 재기에 성공하지만 나이를 초월한 열정도 평생 그를 옥죄었던 외로움의 그늘을 걷을 수는 없었다. 삶이 고통스러울수록 그는 더욱 일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모르핀에 취한 채 숨을 거두고 만다.

“럭셔리는 천박함의 반대”라고 그는 말했던가. 샤넬의 명품, 그것은 디자이너의 인생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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