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의 엄마는 방송에도 출연하는 유명한 미술평론가다. 조각가의 생명인 손을 다친 뒤부터 엄마와 사이가 나빠진 아빠는 나래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와 이혼했다. 나래 오빠를 데리고 나간 아빠는 재혼한 뒤 시골에서 오리를 키우며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다. 반면 엄마는 행여 나래가 상처 받을까 봐 필사적으로 주위에 이혼 사실을 숨기며 산다. 그래서 나래의 아빠는 공식적으로는 “미국 어느 연구소에서 연수 중”이다.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이혼가정 이야기도 창작 동화의 흔한 소재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사회 현실을 다룬 창작 동화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정작 동화(소설)를 읽는 재미가 묻히기 쉽다는 것.
나래가 위층에 사는 같은 반 남학생 희주를 짝사랑하지만, 아내와 사별한 희주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싹트는 감정을 눈치 채고 갈등하는 내용은 사춘기 무렵의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법한 한 편의 파스텔빛 성장 동화로 읽힌다.
특히 아이들에게 ‘내시’라는 놀림을 받으면서도 발레리노를 꿈꾸며 발레학원을 다니는 소년 희주는 이 이야기가 표면적으로는 이혼 가정의 이야기지만, 사실은 사회적 편견에 맞서야 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도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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