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순 감사 “KBS ‘시대정신’ 내세워 권력에 봉사”

  • 입력 2006년 6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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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순 KBS 감사는 KBS와 권력의 밀월관계가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KBS가 올해 신년특집으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내보낸 뒤 1월 18일 대통령이 양극화 문제를 들고 나왔다”며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강동순 KBS 감사는 KBS와 권력의 밀월관계가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KBS가 올해 신년특집으로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내보낸 뒤 1월 18일 대통령이 양극화 문제를 들고 나왔다”며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7월 퇴임을 앞둔 KBS 강동순(61) 감사가 ‘KBS와 권력’이라는 240쪽 분량의 원고를 최근 탈고했다. 이달 말 출간 예정인 이 글에서 강 감사는 KBS가 국영방송에서 공사로 전환한 후에도 사장 선임 등을 두고 권력과 유착해 왔다고 여러 자료와 내부 증언을 통해 주장했다. 특히 그는 정치권력뿐 아니라 1980년대 말 이후 등장한 KBS 노동조합과 직능단체 등 내부 단체도 출범 때의 초심을 잃고 권력구도의 한 축이 되어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14일 기자와 만난 강 감사는 “33년간의 KBS 생활을 마감하며 세월이 바뀌어도 권력에 충성해 온 KBS의 현주소를 내부 고발을 통해 공론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집필 이유를 밝혔다.

그는 권력을 위해 공정성을 해친 최근의 사례로 2004년 3월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방송을 꼽았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는 탄핵 반대와 찬성의 비율이 7 대 3이었지만 KBS의 방송은 양적으로 9 대 1 수준이었습니다. 질적으로는 더 했습니다. 당시 전국 곳곳에 중계차를 띄워 생방송을 할 때 본사의 한 간부는 지역국 간부에게 ‘탄핵 반대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 곳으로 나가라’고 지시할 정도였어요. 총선 3일을 앞두고는 ‘탄핵소추 한 달’ ‘대통령 권한 정지’ 등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어 탄핵 분위기를 이어갔습니다. 5 대 5의 기계적 균형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다룰 때 차선책은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영방송이 여론만이 진실이라는 태도로 방송을 해서는 곤란합니다.”

강 감사는 이 같은 현상이 과거처럼 누구의 일방적 지시라기보다 상층부와 이른바 ‘시대정신’을 갖고 있다는 일부 PD, 기자, 노조의 결합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에서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대신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반대급부도 주어집니다. 정연주 사장이 취임 후 실시한 팀제에서는 전체 팀장급 179명 중 노조 간부 출신이 33명(18.4%)입니다. PD협회장이 본부장급 간부를 추천하거나 절대불가 의견을 내면 반영되기도 하고요.”

그는 KBS가 계속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시대정신’ ‘정의’에 집착하는 오만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생방송 시사투나잇’은 2003년 11월 시작된 후 편향성 문제로 160여 회나 심의실의 지적을 받았지만 건재하고 있습니다. 라디오 시사프로에선 파업을 다룰 때 노동계 인사만, 정치 문제에선 여당 쪽 인사만 출연시키는 경우가 점점 늘었습니다. 역대 정권에서 ‘정의’나 ‘시대정신’을 강조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요. 유럽 공영방송의 뉴스는 재미없다고들 하지만 이는 불편부당을 견지하기 위해 이해관계를 철저히 배제하고 사실 위주로 나열하기 때문입니다.”

강 감사는 KBS 내부에서 정 사장의 개혁의 발목을 잡는 ‘수구세력’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KBS의 개혁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필요하다”며 “정 사장의 개혁이 아마추어적으로 폐해가 커 반대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일례로 정 사장이 충남 공주 등 지역국 7곳을 폐지한 것과 팀제를 도입한 것을 성과로 꼽지만 지역국 폐지 효과로 나타나야 할 지역 프로그램의 활성화 등은 찾을 수 없고 팀제는 팀장 한 사람이 수십 명을 관리하면서 게이트키핑 실종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그는 KBS가 방만한 조직을 개혁하려면 뉴스 보도의 핵심 기능과 시사 관련 부서만 제외하곤 모두 분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KBS가 수신료를 올려 달라고 하면 국민은 방만한 군살부터 빼고 공정하게 방송하라고 합니다. 드라마 교양 오락 프로그램은 수많은 제작사가 만든 것 중 잘된 것을 골라 방송하면 됩니다. KBS 스스로 개혁할 기회를 놓치고 남에게 떠밀려 개혁하면 오히려 모든 걸 잃게 됩니다.”

강 감사는 KBS에 부정적인 감사 결과가 한나라당에 유출될 때마다 내부 제보자로 의심받았다. 최근에는 한나라당이 추천할 차기 방송위원으로 거론되고 있어 한나라당과 결탁했다는 비난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그는 “한나라당과 결탁한 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며 “방송위원 건은 나를 비난하는 쪽에서 ‘거봐라, 한자리 꿰찰 줄 알았다’고 할 것 같아 고심했지만, 일하고 싶은 생각은 있다”고 밝혔다.

○ 강동순 감사는

KBS가 공사로 전환한 1973년 공채 1기로 입사해 교양제작국 부주간, KBS시청자센터 센터장 등을 거쳤다. 일선에서는 다큐멘터리 PD로 일하며

‘광주를 말한다’ ‘다큐멘터리 제5공화국’(이상 1989년)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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