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執中無權(집중무권)’이라는 말이 있다. ‘執’은 ‘잡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執權(집권)’은 ‘권력을 잡다’라는 뜻이고, ‘執權黨(집권당)’은 ‘권력을 잡은 당’이라는 뜻이다. ‘固(고)’는 ‘견고하다, 완강하다’라는 뜻이므로 ‘固執(고집)’은 ‘견고하게 혹은 완강하게 잡다’라는 말이 된다. 어떤 생각이나 자세를 ‘견고하고 완강하게 잡고 있는 것’이 固執이다. 그러므로 固執스러운 자세에는 유연성이 없게 마련이다. ‘執’은 ‘잡다’라는 뜻으로부터 ‘관리하다’라는 뜻도 갖는다. 어떤 일이나 임무를 ‘잘 잡고 있는 것’이 곧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執’이 ‘事(일·사)’와 함께 쓰인 ‘執事(집사)’는 원래 ‘일을 관리하다’라는 뜻인데, 나중에는 어떤 집안의 일을 전문적으로 관리해 주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中’은 ‘중간, 중용’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中庸(중용)’을 이것과 저것의 중간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는 ‘가장 정확한 중간’을 뜻하는 말이다. 이 ‘가장 정확한’이라는 의미를 뺀다면 이는 中庸의 진실한 뜻을 아는 것이 아니다. ‘權’은 ‘저울추’라는 뜻이다. ‘저울추’로부터 ‘저울질하다, 大小輕重(대소경중)을 분별하다’라는 뜻이 생겨났다. ‘저울질을 하는 것’은 저울대를 평평하게 유지하는 것이므로 이로부터 ‘고르게 하다, 평평하다’라는 의미도 생겨났다. 또한 저울추는 사람이 잡고 움직이는 것이므로 이로부터 ‘잡다’라는 뜻도 생겨난다. ‘權勢(권세)’는 ‘잡은 힘’이라는 뜻이며 ‘權利(권리)’는 ‘저울질하여 얻은 공평한 이익’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의 분수에 넘치는 것은 나의 權利가 아니다. 위의 의미를 정리하면 ‘執中無權’은 ‘중용을 취한다고 취하기는 하였으나 저울추가 없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저울추가 없이 중용을 취하다’라는 뜻이 된다. 이 말은 곧 중용을 취할 때는 저울추같이 정밀하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중용이 아니라 또 하나의 固執스러운 자세가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孟子(맹자)’에 나온다. 孟子는 이와 같이 정밀하지 않은 중용을 가장 경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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