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를 기획한 사람은 김인희(43)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사실 한국 무용수들의 무대 수명이 외국보다 짧아요. 앞날이 불안하다 보니 30대 중반만 되면 학교로 많이들 빠져나가고…. 후배들에게 나이 들어서도 계속 현장에서 춤을 출 수 있다는 자극을 주고 싶어서 공연을 기획했어요.”
‘발레 3545’에 참가하는 18명 무용수의 평균 연령은 마흔. 무용수로는 ‘정년’을 넘긴 나이다. 참가자 중 ‘최고령’ 무용수는 47세의 백연옥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 예술감독. “국내 발레리나 중 유일하게 아이가 둘”이라는 ‘엄마 발레리나’ 연은경(39·서울발레시어터)도 무대에 선다.
이원국과 함께 현역 국내 최고령 발레리노는 서울발레시어터의 정운식(39) 지도위원. 정 위원은 “쉰 살까지 무대를 지키는 게 꿈”이라고 했다. 모던 발레에 비해 클래식 발레단의 남자 무용수들의 수명이 더 짧다. 이번 공연에 참가하는 신무섭(36)과 황재원(36)은 각각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최고령 발레리노’다.
나이가 들수록 표현력은 깊어지지만 테크닉이나 체력 면에서는 떨어진다.
“저는 몸은 역사라고 생각해요. 살아온 삶들이 몸에 하나하나 새겨진…. 나이 든 무용수들은 테크닉이나 기교로는 보여줄 수 없는, 몸에 담긴 풍부한 삶을 표현해야겠죠.”(박호빈·39·‘까두’ 대표)
현재 최정상에 있는 후배 발레리나 강예나가 “35세에는 은퇴하고 싶다”고 말하자 ‘3545’ 선배 무용수들은 가만히 웃는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퇴장’을 고민하는 것은 차라리 한창때의 젊은 무용수들이다. 육체적 전성기를 지난 무용수들은 오히려 그런 강박에서 여유롭다.
“다시는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머리까지 짧게 잘랐지만(발레리나는 머리를 길러야 함) 발레 음악만 들어도 눈물이 나서 다시 춤을 추게 되더라.”(김인희)
과연 떠나는 발레리나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나이는 언제일까.
7월 22일 오후 4시 정동극장 2만∼5만 원, 25일 오후 8시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1만∼3만 원. 02-3442-2637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 무용수 정년은 40세?
세계 3대 발레단 중 하나인 프랑스의 파리오페라발레의 경우 아예 ‘무용수 정년은 40세’로 명문화 돼 있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도 마찬가지. 하지만 주역을 맡는 세계적인 무용수들은 대부분 단원이 아닌 계약을 통해 객원 무용수로 활동하기 때문에 마흔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고령’ 톱스타는 파리오페라발레 수석무용수 출신으로 현재 영국 로열발레단에서 객원 무용수로 활동 중인 실비 기엠(41)이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객원 발레리나인 니나 아나니아시빌리(43)와 알렉산드라 페리(43)도 불혹을 넘긴 세계적인 무용수. 남자로는 역시 ABT에서 활동 중인 발레리노 훌리어 보카(43)가 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령’ 발레리나로는 단연 마고 폰테인(1919∼1991)이 꼽힌다. 폰테인은 마흔 살이 넘어 세계적인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와 환상의 콤비를 이룬 후 환갑 때까지 외국 공연을 다니며 토슈즈를 신었다.
러시아의 ‘국보급’ 발레리나로 꼽혔던 마야 플리세츠카야(81) 역시 일흔 살의 나이로 가녀린 ‘빈사의 백조’를 소화해 내 찬사를 받았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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