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수사국(FBI)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다. 언론도 ‘미시시피 버닝’ 사건이라고 부르며 대서특필했다. 앨런 파커 감독이 1988년 제작한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바로 그 사건이다.
세 청년은 인권평등회의(CORE) 소속 운동가였다. 마이클 슈워너와 앤드루 굿맨은 뉴욕 출신 백인이었고 제임스 체이니는 현지 흑인 청년이었다. 슈워너는 그해 1월 인종차별이 유난히 심하던 미시시피 주에서 흑인의 투표권 행사 지원운동을 활발하게 벌였다. KKK는 5월 그에게 경고를 했지만 슈워너는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인권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6월 16일 KKK 단원 20여 명이 슈워너가 머물던 흑인교회를 습격해 흑인들을 때리고 교회에 불을 질렀다.
습격 당시 외부에 있던 슈워너는 CORE 신입회원 굿맨과 체이니를 데리고 돌아와 사건 경위를 조사하다가 21일 카운티 보안관을 만난다. KKK 단원이었던 보안관은 동료 10여 명을 불렀다. 청년들은 집단 구타당한 뒤 총에 맞아 숨졌다. 이들의 시신은 44일 뒤에야 발견됐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미국의 짙은 그늘을 보여 준 것은 사건 자체보다도 그 후 진행된 일들이었다. 에드거 후버 당시 FBI 국장이 지휘에 나설 정도로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졌지만 결과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범인들이 누구인지는 다 알려졌지만, 누구도 증언을 하려고 하질 않았기 때문이다. 범인 중 한 명이 플리바기닝(유죄를 인정하면 형량을 깎아 주는 제도)을 통해 법정에 나서기로 하면서 문제가 풀렸다. 그해 12월 보안관을 비롯해 19명이 기소됐고 3년이 지나서야 판결이 내려졌다. 혐의자들은 3∼10년 징역형을 받았지만 모두 형기 만료 전에 석방됐다.
2005년 5월 ‘미시시피 버닝’의 주모자인 에드거 레이 킬런에 대한 재판이 재개됐다. 1960년대 재판 당시 한 배심원이 전도사인 킬런에게 유죄 평결을 내릴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그는 석방됐지만 다시 기소된 것이다. 80세인 킬런은 징역 60년 형을 선고받았다. 사건 발생 41년 만에야 ‘미시시피 버닝’의 모든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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