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스위스인]시계 톱니 같은 ‘정밀의 화신’

  • 입력 2006년 6월 21일 03시 00분


스위스. 톱니의 나라다. ‘스위스 메이드’의 얼굴인 시계가 톱니고 산악철도의 레일이 톱니다. 주요 수출품인 터빈의 기어도 톱니고 산악의 케이블카 역시 톱니다. 축구도 톱니를 연상케 한다. 시계 톱니처럼 정확하게 들어맞는 잘 짜인 조직력 때문이다. 그 톱니. 스위스를 온통 에워싼다. 마터호른 등 알프스 산악이 죄다 톱니 모양이다.

톱니의 숙명. 하나로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 모여야 기능한다. 그 때문일까. 스위스는 연방국가다. 26개의 작은 주(칸톤)의 집합이다. 알프스와 쥐라, 두 산맥의 산악에 갇힌 26개 톱니바퀴로 스위스라는 ‘명품 시계’는 돌아간다.

독일어권의 세 나라,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공통점은 ‘정확’이다. 거기서 굳이 우열을 가린다면 ‘정확’에 관한 한 스위스가 부동의 1위다. 돌다리도 두들기는 게 독일이라면 그 다리 두들기다 부수는 게 스위스다. ‘정확의 사도’ 독일인마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게 ‘정밀의 화신’ 스위스다.

정밀의 절정. 그것은 시계다. 시계는 정확성을 생명으로 한다. 그런 정밀함과 정확성. 과연 어디서 비롯됐을까. 그것은 혹독한 자연이다. 평생을 산에, 연중 절반을 눈에 갇혀 지낸 스위스인. 집중력은 게서 왔다. 정교한 무늬의 스위스 레이스(lace)도 그 산물이다.

스위스는 한때 용병으로 먹고살았다. 사람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던 중세의 가난한 나라 시절이었다. 당시는 용병만 한 수입원이 없었다.

용병의 최고가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을 버리지 않고 계약을 지키는 신뢰와 믿음이다. 프랑스 대혁명 와중에 루이 16세를 지키다 전몰한 스위스 용병 786명(루체른 빙하공원의 ‘빈사의 사자’상)은 한 예다.

스위스인은 용병 역사를 통해 신뢰와 믿음으로 무장된 사람들이다. 스위스 시계는 그런 ‘믿음’과 ‘신뢰’의 용병 정신에서 탄생된 또 다른 스위스 메이드다. 신뢰가 생존 전략인 스위스인. 그들에게 시계는 ‘정확한 시간’이란 믿음을 약속하는 또 다른 계약이다. 결혼 예물로 시계를 주고받는 것도 같은 의미다.

스위스 사람에게 곁눈질이란 없다. 제 앞에 놓인 것에 최선을 다한다. 고지식하리만큼 철두철미한 장인정신. 그 때문에 스위스는 가끔 ‘유럽의 왕따’가 되기도 한다. 지나친 꼼꼼함이 융통성 응용력과 화합하지 못함이다. 그런 스위스 사람을 지칭하는 제스처가 있다. 양손바닥을 모로 세워 눈 곁에 갖다대는 몸짓. 곁눈질 못하게 말의 양눈에 대는 안대를 의미한다. 고집불통, 외골수, 독불장군의 스위스. 그러나 뒤집으면 원칙주의, 성실, 근면, 뚝심의 스위스다.

그런 스위스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2003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펼쳐진 제31회 아메리카스컵 요트대회다. 이 대회는 스위스의 파란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바다 없는 내륙의 알프스 산악국가 스위스의 알링기호. 100년 이상 우승컵을 독차지해 온 미국, 3연승에 도전한 신예 뉴질랜드를 꺾고 우승컵을 거머 쥐었다. 우승 요인은 간단했다. 전 대회(30회) 우승자인 뉴질랜드팀 선수와 독일의 올림픽 3관왕 요트 스타를 스카우트한 것.

알링기호를 통해 본 스위스의 변화. 그것이 일시적인 해프닝인지, 계속될 변화의 전주곡인지 궁금하다. 눈가리개 한 말처럼 앞만 보고 내달리는 융통성 전무한 정밀의 화신으로 안주할지, 아메리카스컵의 알링기호처럼 유연한 전략적 사고로 목표를 탈취하는 융통성까지 갖춘 정밀의 화신으로 진보할지. 그래서 2006 독일 월드컵 한국-스위스전은 더더욱 기대된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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