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니 핑크’를 연출했던 독일 여성감독 도리스 되리의 신작 ‘내 남자의 유통기한’은 ‘파니 핑크’와 마찬가지로 판타지적인 요소를 로맨틱 코미디에 차용해 사랑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 본다. 이 영화가 ‘파니 핑크’보다 한결 진전된 점이 있다면, ‘사랑’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알고 보면 ‘인생’의 본질까지 유쾌하고도 절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얼핏 성공 지향적인 아내와 가정 지향적인 남편이라는 특이한 조합의 부부에게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다수’의 부부가 겪을 만한 고민과 위기를 섬세하게 짚어 낸다. 사랑을 나누기보다 인생을 나누는 것이 100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위트 있게 그려 내면서 말이다.
“늘 당신처럼 인생에 계획을 세워야 해?”(남편) “당신은 꿈이 없어.”(아내) “왜 당신은 늘 우리의 현실을 극복하려고만 들지?”(남편) “당신은 계획도 꿈도 없어.”(아내) “당신은 뇌도 없이 계획만 짜.”(남편)
톡톡 쏘는 재치 만점의 부부간 대화를 늘어놓으면서 영화는 어느새 사랑과 생활과 행복에 대한 깊은 통찰에까지 팔을 벌린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성공 욕망에 부풀고, 배우자에게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다가, 결국엔 가장 중요한 것을 잃게 되는 욕망의 행로 말이다. 영화는 때론 이들 부부를 느긋하게 관찰하는 어항 속 잉어 부부의 시점으로 훌쩍 옮아가서 돈과 사랑과 행복을 두고 유치한 쟁탈전을 벌이는 인간들의 모습을 비꼰다. 결국 부부의 험난한 인생 역정을 함께 달려온 영화가 다다르는 아름다운 결말은 이것이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아내) “사랑해.”(남편)
사랑에 빠지고 싶은 사람이나, 사랑에 빠진 사람이나, 사랑에 싫증 난 사람이나, 혹은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라면 보기를 권한다.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점과 씨네큐브에서 29일 개봉.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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