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 작가였던 박현욱(39) 씨의 세 번째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출간 3개월 만인 지난주 판매부수 10만 부를 돌파했다. 웬만해선 소설이 1만 부 팔리기도 어렵다는 시대에 눈부신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반기엔 그 바통을 이을 젊은 작가들의 기대작 장편들이 줄줄이 예고돼 있다. 박민규(38) 씨의 ‘핑퐁’과 ‘죽은 왕비를 위한 파반느’(가제), 김탁환(38) 씨의 ‘리심’, 심윤경(34) 씨의 ‘이현의 연애’(가제)가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30대의 나이에 장편으로 등단해 장편 위주의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문단의 전통과는 다른 행보다. 일반적으로 문학소년 시절을 거쳐 20대에 단편소설로 문예지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꾸준하게 단편을 발표하고 소설집을 한두 권 묶은 뒤 장편에 도전하는 게 신인 작가들의 관례였다.
그러나 박현욱 박민규 심윤경 씨는 모두 장편 공모를 통해 등단했으며, 김탁환 씨는 단편발표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장편 집필에 주력하고 있다. 문단에서 차기작이 기대되는 신인으로 꼽히는 천명관(42) 씨도 장편 ‘고래’로 등단했다.
이들 장편 작가군은 삶의 이력도 전통적 문단의 관점에서 보면 ‘이종(異種)’이 많다.
천명관 씨는 영화 시나리오 ‘북경반점’, ‘총잡이’를 쓴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다. 심윤경 씨는 대학원 때까지 실험실로 출근한 이공계(서울대 분자생물학과) 졸업자다. 김탁환 씨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디지털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박민규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선 소설 한 권 읽지 않은 채 해운회사 영업사원,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등 잡다한 일을 하면서 먹고살았다고 한다. ‘단편으로 제도적 승인을 받고 장편으로 시장에 진출한다’는 관습을 거스르는 이들은 문학수업 이력서도 10대 때부터 열심히 습작하면서 작가로 데뷔하기만을 꿈꿨던 ‘순종 문학키드’들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등장이 문화적인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평론가 이광호 씨는 “새로운 장편 작가들은 소설만을 위한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장르로 변주가 가능한 서사구조를 만드는 게 큰 특징”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다 삶의 이력이 이종적인 만큼 소설 문법과 상상력도 낯설어서 기존 문학을 새롭게 하는 역할도 했다는 게 평단의 분석이다. 신진 작가군의 형성은 변화된 문단 환경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다. ‘문학동네’와 ‘작가세계’ 등이 1990년대부터 신인 작가들을 대상으로 장편을 공모하면서 장편 등단의 바탕을 다졌고, ‘문학·판’ ‘문학수첩’ 등 2000년대 들어서 창간된 문예지들도 앞 다퉈 장편공모에 나선 것. 이런 경향은 “한국문학의 단편 편중 현상을 완화하고 장편 중심의 세계적인 추세에 부응한다”(평론가 신수정)는 분석도 나온다. 한 출판 관계자는 “원고지 대신 컴퓨터로 집필을 하면서 장편에 대한 육체적 부담이 덜어진 것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우려도 있다. 장편으로 등단하는 신인은 곧바로 책이 출간되는 만큼 출판 시장에서 즉각적으로 화제가 될 수 있지만, ‘반짝 스타’로 끝날 가능성도 높다는 것. 이광호 씨는 “문학적 기본기를 단단히 하지 않은 채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독자의 기호만을 의식하다가 오히려 독자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