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로 지구 인구의 99%가 사망한 뒤 살아남은 500만 명이 외부와 차단된 채 살아가는 미래 도시 ‘브레냐’. 굿차일드 가문이 400년째 지배하는 이 도시에는 ‘모니칸’이라 불리는 저항군 집단이 정부군에 대항하고 있다. 모니칸 최고의 여전사 ‘이온 플럭스’는 정부 요새에 침투해 최고의장인 트레버 굿차일드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하지만 그는 굿차일드에 대한 알 수 없는 연민의 감정에 이끌려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한다.
22일 개봉된 ‘이온 플럭스’는 ‘매트릭스’ 이후 공식처럼 정착된 ‘미래 전사(戰士)’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퀼리브리엄’이나 ‘브이 포 벤데타’처럼 이 영화 역시 미래세계에 횡행하는 신종 파시즘, 억압받는 인간의 자유, 흔들리는 인간의 정체성에 얽힌 철학적 질문으로 포장한 뒤 절대 권력에 대항하는 외로운 전사가 보여주는 스타일 있는 액션과 불같은 사랑으로 방점을 찍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발레로 가꿔진 매혹적인 몸매의 샤를리즈 테론을 여전사로 기용했다는 점. 바로 이 사실은 독특한 스타일의 액션 체계를 만들어 내는 씨앗이 된다. ‘이온 플럭스’의 액션은 마치 리듬체조와 요가를 섞어 놓은 것 같다. 몸은 엿가락처럼 이리저리 휘고, 동작은 작은 쉼표도 허용하지 않은 채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동작의 유연성과 연속성은 미래사회의 도시 모습을 표현하는 ‘젠(禪)’ 스타일의 의상 및 미술과 뒤섞이면서, 안정되고도 불안한 감정을 촉발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액션은 ‘스타일’이 갖는 흔한 오류에 빠져 있다. 아이디어는 난무하지만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액션 스타일이 내용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새로움’만을 외치는 데서 온 부작용이다.
‘기억이 죽음을 초월한다’와 같은 그럴 듯한 화두를 던지면서 어둡고 굉장하고 복잡한 척하던 이 영화의 철학적 문제 제기는 결국엔 별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관객의 실망감을 배가시킨다. 액션 과잉, 이야기 과잉, 몸매 과잉이다. 12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좌충우돌 카우걸…‘밴디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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