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서 읽을 만한 책]올여름엔 책의 바다에 빠져보세요

  • 입력 2006년 6월 24일 03시 09분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바다와 강과 산, 어느 곳을 가든 한 권의 책만 한 여행 동반자가 또 있을까. 동아일보 ‘책의 향기’ 팀은 문화예술계와 학계 정치 경제계 등에서 책 좋아하기로 소문난 10명에게 올여름 휴가 때 어떤 책을 읽을 계획인지,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책을 권하고 싶은지 물었다. 명사들은 각자의 자리를 정확히 알기 위해, 혹은 미래의 길을 찾기 위해, 지친 영혼에 휴식을 주기 위해 책을 펼친다고 말했다(가나다순).》

삶을 변화시키는 ‘비전으로…’

▽김쌍수(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여름휴가는 직장인에게 청량제와 같지만 휴가를 마친 후에 더 무거운 피로감을 호소한다. 똑같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주는 중압감 때문일까. 여기서 벗어나려면 켄 블랜차드의 ‘비전으로 가슴을 뛰게 하라’(21세기북스)가 효과적이다. 이 책은 평범한 여성인 주인공 엘리와 사장 짐의 이야기를 통해 ‘비전’의 의미와 비전을 세우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마음 깊이 새겨 읽는다면, 자신의 삶에 큰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은 놀랍도록 간단하면서도, 실질적이고 강력하다.

역사도 함께 배우는 ‘서유견문’

▽신경숙(소설가)=대한제국 말 사상가 유길준의 ‘서유견문’(서해문집)을 추천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 사람이 쓴 서양 유람기다. 그렇다고 그저 스케치가 아니라 방대한 서양 입문서다.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라서 부담이 되긴 하지만 배우는 게 많다. 역사 공부와 함께 옛 지식인의 내면도 엿볼 수 있다. 서양의 정치 법률 교육 과학 등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는데 그 속에 새로운 문명을 향한 저자의 뜨거운 열망이 담겨 있다. 기록에 대한 성찰도 하게 된다.

‘좋은 기업…’ 전략의 중요성 배워

▽오세훈(서울시장 당선자)=우리는 대부분 ‘굿(good)’에서 만족한 채 멈추려고 한다. 하지만 그 순간 도태되기 시작한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김영사)는 ‘굿’에서 만족하지 말고 ‘그레이트(great)’로 향하라고 주문한다. 저자는 위대함을 향한 목표 의식과 이를 위한 장기적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시장의 임기는 4년에 불과하지만 100년 앞을 내다봐야 한다. 좋은 서울을 넘어 위대한 서울을 건설하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으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위대한 서울을 만드는 방향에 대해 깨닫는 바가 있었으면 한다.

압축의 예술 ‘시 읽기의 방법’

▽유인촌(연극배우·서울문화재단 대표)=올여름에는 유종호 선생의 ‘시 읽기의 방법’(삶과 꿈)을 읽을 거다. 한적한 자연에서 한여름 밤에 시를 읽으면 얼마나 좋은가. 이 책은 시 50편과 그 시에 대한 해석을 붙여 놓아 시를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시집을 읽는 것은 배우에게 도움이 많이 된다. 시는 압축의 예술이다. 무대 연기도 마찬가지다. 시간과 장소를 무대에서 압축해 놓은 것인 만큼 연기도 실제의 삶이 압축돼 나와야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집을 즐겨 읽는 편이다. 시의 여운을 느껴보고, 시를 읽으며 그에 맞는 움직임 연습도 한다.

조선시대 마니아들 ‘미쳐야…’

▽이준익(영화감독·‘왕의 남자’ 연출)=지금 진행 중인 영화 ‘라디오스타’ 촬영을 마치는 대로 고미숙 씨가 쓴 ‘열하일기-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과 정민 한양대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를 읽을 것이다. 박지원을 필두로 홍대용 유득공 박제가 이덕무 등 백탑파 멤버들은 한국 최초의 마니아 집단이었다. 당시 선비들이 즐기던 시, 문인화 대신 비둘기 앵무새 벽돌 기와 등 생활 주변의 사물을 열정적으로 연구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취향이었을 것이다. 흑백논리에 갇히지 않은 세계관을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끌리는 사람…’ 인간관계 도움

▽이창호(프로바둑기사·9단)=바둑에서 끝내기는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거래나 이해관계가 끝났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지가 그 사람의 그릇을 보여 준다. “말(馬)이 힘이 있는지 알려면 먼 길을 가봐야 하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시간이 오래 지나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더난출판)는 “끝이 곧 시작”임을 비롯해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법을 두루 알려준다. 성공을 좌우하는 것이 개인의 학벌 지식 능력보다 호감, 즉 끌림이고 이것은 불과 1%의 작은 차이에서 비롯됨을 배웠다.

삶과 사상의 길잡이 ‘…함석헌’

▽정운찬(서울대 총장)=휴가를 갈 수 있을지 몰라서 내가 읽을 책보다 휴가 때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겠다. 레스터 서로가 지은 ‘세계화 이후의 부의 지배’(청림출판)를 추천한다. 서로는 수리적 측면에 함몰되지 않고 경제의 질적 측면을 볼 줄 아는 경제학자이다. 그는 먼저 세계화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고 그 안에서 세계 경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가 쓴 ‘내가 본 함석헌’(아카넷)도 권하고 싶다. 사상적 안내자, 정신적 지도자가 얼마 없는 이 시대에 함석헌 선생의 삶과 사상은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생각한다.

인생의 의미 가르쳐준 ‘연금술사’

▽조수미(성악가)=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문학동네)를 다시 한번 읽고 싶다.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한 소년의 신비한 체험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읽을수록 인생의 의미에 대해 깨닫게 된다. 연주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에서 긴 시간을 보낼 때면 이 책을 거듭 손에 잡게 된다. 성악가로서 세계를 떠돌다 보니 왜 난 이렇게 집시처럼 떠돌아 다녀야 하는지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인생은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영원한 여행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게 됐다. 내가 찾아 헤매던 답을 찾아 준 책이라고나 할까.

읽고 또 읽어도 좋은 ‘삼국지’

▽최우석(삼성전자 상담역)=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 국내에서 많이 벌어지지 않는가. 그렇지만 이런 일이 천지개벽 이래 처음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반복해서 잘못을 저지른다. 역사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삼국지’를 읽고 있다. 전에도 자주 봤지만 나이가 들면서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진다. ‘삼국지’를 옮긴 작가들이 많은데, 특히 언론인 출신 정소문 씨가 번역한 ‘삼국지’(원경)가 꼼꼼하고 정확하다. 정사를 대조해 가며 나관중 ‘삼국지연의’의 오류도 짚고 주석도 자세하게 달았다. 역자의 노고가 돋보이는 책이다.

황홀한 희곡집 ‘옛날 옛적에…’

▽한석규(영화배우)=최인훈의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문학과 지성사)를 읽고 싶다. 쉼 없이 영화 출연이 이어지다 보니 나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면서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게 사실이다. 최인훈의 희곡집은 ‘시극(詩劇)’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리듬과 운율이 탁월하다. 우리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시적인 지문을 대할 때면 황홀한 기분마저 느껴진다. 활자 사이에 놓인 여운을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친근하게 웃고 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선하다. 그의 희곡집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꿈을 꾸고, 상상하다 보면 잊혀졌던 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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