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미학, 사진 속에 빠져볼까

  • 입력 2006년 6월 27일 03시 00분


북한산을 배경으로 버려진 인형의 집을 배치해 자연과 인공이 마주치는 초현실적인 공간을 연출한 강홍구의 ‘미키네 집’. 사진 제공 로댕갤러리
북한산을 배경으로 버려진 인형의 집을 배치해 자연과 인공이 마주치는 초현실적인 공간을 연출한 강홍구의 ‘미키네 집’. 사진 제공 로댕갤러리
여기 두 가지 풍경이 있다. 하나는 하늘로 팔 뻗친 소나무들의 신령한 기운이 느껴지는 ‘자연적인’ 풍광을 담은 사진이라면, 다른 하나는 재건축 철거 현장의 텅 빈 집들과 버려진 장난감을 결합해 얼핏 생뚱맞게 보이는 이미지를 연출해낸 ‘인공적인’ 현장 사진이다.

전자는 독자적인 풍경 사진으로 국제적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사진작가 배병우(56)의 ‘소나무’ 시리즈, 후자는 합성사진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비틀고 풍자하는 강홍구(50)의 ‘미키네 집’ ‘수련자’ 시리즈다. 풍경을 주제로 하면서도 극과 극 같은 이들의 작품은 비교 감상해 보면 더욱 흥미롭다.

마침 두 작가의 사진전이 서울의 대형 전시장 두 곳에서 각각 열리고 있다. 독일 작가 엘거 에서와 함께하는 배병우 사진전은 7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 강홍구의 ‘풍경과 놀다’전은 8월 6일까지 서울 로댕갤러리(02-2259-7781)에서 이어진다.

30여 년간의 사진 작업 중 소나무만 20년 넘게 찍어 온 배병우. 1층의 신작들과 더불어 2층은 아예 작가의 대표 브랜드인 소나무 시리즈로만 꾸몄다. 독일에서 사진을 공부한 그는 신비로운 빛과 공기의 미묘한 결이 느껴지는 소나무 사진을 발표해 수집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티센 미술관에서도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강홍구. ‘나는 지극히 무의미한 가짜 사진들을 만들고 싶었다. 미술 작품을 둘러싼 제도와 말과 이론들이 너무 짜증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사진들이 무의미하고, 공허하고, 황당무계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말하는 작가는 기존의 체제에 반발하는 의미로 스스로를 ‘B급 작가’로 칭한다. 재개발 현장의 평범한 풍경도 일단 그의 카메라 렌즈로 걸러내면 낯설고 불안한 기미가 느껴지는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이들 사진전 외에도 최근 원로와 중견, 신인작가의 다양한 사진전이 동시 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한국 사진의 흐름과 맥락을 종으로, 횡으로 짚어 보는 동시에 미술계에서 사진 예술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해 볼 기회란 점에서 사진 애호가들에게 각별한 즐거움을 안겨 주는 전시들이다.

이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계의 대표적 원로인 주명덕(66)의 회고전이다. 10월 31일까지 경북 경주시 아트선재미술관(054-745-7075). 무려 600여 점의 사진을 통해 40여 년간 변화해 온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다. 전쟁 고아들과 인천 차이나타운을 다룬 초기의 사진에서는 사회적 기록으로서 사진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 1970년대의 자연 풍경과 인물 사진들, 1980년대 이후 ‘잃어버린 풍경’ 시리즈와 ‘도회 풍경’ 시리즈에선 작가의 감성으로 복원해낸, 사라지거나 잊혀진 것들의 아름다움과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대표 원로작가 황규태(68)의 ‘가짜가 아름답다’전은 7월 12일까지 경기 양평군 사진갤러리 와(031-771-5454)에서 열리고 있다. 우주의 행성을 찍은 듯 보이는 작품이 사실 커피 탁자 위에 쌓인 먼지를 촬영한 사진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를 통해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7월 16일까지 공근혜 갤러리에서 열리는 김상수(48)의 ‘도시의 색-서울, 도쿄, 파리’전도 사진에 대한 관습적 이미지를 무너뜨린다(02-738-7776). 파랑, 빨강, 노랑 등 강렬한 색의 파장이 느껴지는 작품들은 그림같이 보이지만, 실제론 색과 빛에 초점을 두고 찍은 회화적 사진들이다.

젊은 작가로는 올해 처음 제정된 뤼미에르 국제사진상을 받은 윤 리(39)의 수상 기념전이 눈길을 끈다. 7월 9일까지 갤러리 뤼미에르(02-517-2134). 한 액자 속에서 나란히 이웃한 인물과 정물 사진은 처음엔 이질적으로 보이나 들여다볼수록 묘한 조화를 이루며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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