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7시45분(현지 시간)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의 연극 전용 극장인 ‘바비칸 시어터’.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이 공연장에서 한국 연극으로는 처음으로 연출가 양정웅(38) 씨가 이끄는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이 공연됐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요정 대신 한국식 도깨비를 등장시킨 색다른 ‘한여름 밤의 꿈’을 꾸기 위해 찾아온 관객은 적지 않았다. 영국 역시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지만 공연 첫날인 이날 80% 이상(유료 객석 점유율 약 75%) 관객이 들어찼다. 바비칸센터의 연극담당 예술 감독인 루이스 제프리스 씨는 “작품 규모상 1층의 좌석만 판매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2층 발코니석도 판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20대 여성이 주류를 이루는 우리 연극 관객과 달리 이날 객석은 남녀 비율도 반반이었고 연령대도 10대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다양했다.
학생 18명을 데리고 단체 관람(School Trip)을 왔다는 런던의 호머턴칼리지(고교에 해당) 영어교사 캐트리아나 매켄지 씨는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이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달리 해석되고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보여 주고 싶어 단체 관람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 “빠르고 경쾌” “대사를 몸짓으로 풀어” 찬사
막이 오르고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도깨비들의 장난, 네 연인의 엇갈린 사랑 소동, 낭만적인 숲 속에서 펼쳐지는 한바탕 꿈같은 이야기…. 400년 전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본고장 영국에서 한복을 입고 판소리 가락을 흥얼거리는 한국적 해학이 담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배우들이 나무를 몸으로 형상화하는 등 양 씨 특유의 신체 움직임과 이미지가 주를 이룬 작품이라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자막 없이 공연됐지만, 이번에는 바비칸 측의 요청으로 영어 자막이 마련됐다.
배우들은 가끔 한두 마디씩 영어로 대사를 하기도 했다. 돼지로 변한 약초꾼과 사랑에 빠진 도깨비가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묻자 약초꾼이 영국인들이 즐겨먹는 “피시 앤드 칩스(Fish and chips)”라고 답하는 대목에서는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 자막 읽느라 관객 시선 분산돼 아쉬움도
양 씨는 “영국 관객들은 워낙 정통극에 익숙해서 그런지 다른 나라의 연극 관객들과는 성격도 좀 다르고 웃음을 터뜨리는 지점도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빠르고 경쾌할(fast and upbeat) 줄 몰랐다” “셰익스피어를 대사가 아닌 몸의 움직임으로 풀어낸 매혹적인 작품”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특히 젊은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연극평론가 마리아 셰프쇼바(런던대 연극과) 교수는 이날 공연을 본 뒤 “한국 연극들 중에서 ‘한여름 밤의 꿈’이 요즘 한국 젊은 연극인들의 감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인 것 같다”며 “셰익스피어의 진수를 뽑아 미국적인 유머로 풀어냈다”고 평했다.
7월 1일 바비칸 공연을 끝낸 뒤에도 ‘여행자’들의 여행은 계속된다. 7월 영국 브리스틀에 이어 독일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8월 폴란드 단스크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페스티벌 전문 극단’이라는 별명처럼 내년에도 호주 시드니 페스티벌과 아들레이드 페스티벌, 홍콩 아트 페스티벌의 공식 초청이 거의 확정된 단계다.
런던=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바비칸센터는:
1982년 3월 개관한 런던 시립 복합 공연장이다. 클래식 콘서트 홀(2026석), 연극 전용 대극장인 ‘바비칸 시어터’(1166석)와 소극장 ‘피트’(200석), 영화관 3개, 미술관 2개, 전시실 3개, 회의실 7개, 도서관 등을 갖춘 유럽 최대의 복합문화공간이다. 바비칸 시어터는 한때 영국 최고 극단인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RSC)의 전용극장이었을 만큼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지금도 세계 각국 연극단체들이 가장 공연하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다. 연중 363일 개관하며 지금까지 2700만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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