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편의 장편소설이 나란히 나왔다. 두 작품 모두 굵직한 문학상을 거머쥔 ‘화려한 백수들’이다.
박주영(35) 씨의 ‘백수생활백서’(민음사)는 올해 오늘의작가상 공동 수상작이다. 이상운(47) 씨의 ‘내 머릿속의 개들’(문학동네)은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백수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풍경을 차지해 온, 현대의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특히 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설 속 백수의 등장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럽다. 두 작가는 각자 백수를 내세워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성 체제에 거센 저항의 목소리를 낸다.
○“비생산적인 것이 소중하다”
노동에 대한 자의식이 없는 주인공은 이상의 소설 ‘날개’의 남자를 떠올리게 한다. 아내한테 빌붙어서 지내는 1930년대 남자에게 식민지시대 지식인의 고뇌가 스며 있던 것처럼, ‘아버지한테 빌붙어서 그냥저냥 하루를 보내는’ 2000년대 여자에게는 문학이 외면받는 세상에 대한 저항감이 스며 있다. 여자가 일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책 읽을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이기 때문. 책이 공들여 읽혀지지 않는 시대에 여자는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가볍고 의미 없고 비생산적이다”라는 여자의 선언은 그래서 의미 있다.
등단 10년째인 이상운 씨의 ‘내 머릿속의 개들’은 풍자적이다. 실직하고 반지하방에서 뒹굴던 백수 주인공에게 ‘가정을 구조조정해 달라’는 대학 동창의 제안이 왔다. ‘서로의 빈곤과 고독을 채우기 위해 고도의 생산성이 보장된 탁월한 합병(결혼)을 했으나’ 엄청나게 비만해진 아내에게 염증을 느낀다며 아내를 ‘꼬셔’ 달라는 것이다.
속도감 있는 대화와 빠른 장면 전환 때문에 소설은 잘 읽히지만 곳곳에서 날카로운 대사가 튀어나와 긴장감을 던져 준다.
“저는 지독하게 한심한 최악의 불량기계였습니다. 생산성이 형편없는 존재였고 효율성이 엉망인 존재였습니다”라는 고백은 거꾸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고 가치로 두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천박한지를 드러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