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를 다룬 책은 무수히 많다. 성공 비결기, 다이어트 성공기, 파란만장한 인생을 다룬 전기까지.
가난과 성폭행에 시달리던 뚱뚱한 흑인 여성이 자신을 브랜드로 한 기업을 이뤄 내고,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선정된 반전은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역경을 극복한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그를 숭배하는 것은 대중의 시선에 머무른다.
많은 지식인은 윈프리로 대표되는 토크쇼 문화에 대한 경멸감을 감추지 않는다.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자신의 치부를 교묘히 상품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자신의 토크쇼 북클럽을 한때 중단했던 이유가 “‘오프라 쇼’에서 책이 추천되면 교양 있는 독자들이 오히려 꺼릴 수 있다”는 말 때문이라는 설도 이를 뒷받침한다.
예루살렘 히브리대의 사회학 교수인 저자가 집필한 이 책은 윈프리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이 책이 윈프리에 주목하는 것은 그가 매일 3300만 명의 시청자를 사로잡고, 0.1t이 넘던 몸무게를 60kg으로 줄이고, 10억 달러의 재산가가 된 개인적 성공에 있지 않다. 저자는 윈프리가 현대사회에 본질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윈프리는 대중문화를 오락에서 종교로 변화시켰다. “시종일관 우리를 낙담시키는 세상에 어떻게 대처하고, 일상의 삶을 방해하고 고통을 안겨주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대중은 오프라 쇼를 통해서 자신의 심적 고통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공감을 체험하고, 윈프리라는 영매를 통해서 그 고통을 자기 계발로 승화시킬 수 있는 치유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윈프리를 통해 대중문화가 비로소 “문화는 세계를 설명하는 합리적 시스템을 제시함으로써 무질서와 무의미에 대응하는 방법”이라는 막스 베버의 관점에 접근하게 됐다는 통찰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저자는 윈프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에 대해 이를 ‘무의미하다고 취급받던 일상에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며 ‘내밀한 영역까지 공공영역을 확대한 것’이라고 옹호한다. 저자는 또 윈프리가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윤리적이고 영적인 문제로 몰고 간다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윈프리가 그처럼 문화와 윤리에 집중했기에 보편적 호소력을 갖는 문화와 가치를 만들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해석이 윈프리 개인을 뛰어넘어 시대적 보편성을 지닐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오프라 쇼의 아류라 할 제리 스프링거 쇼나 그 파생 상품이라 할 각종 리얼리티 쇼에도 같은 해석을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돋보이는 점은 오프라 윈프리라는 지극히 대중문화적 현상을 조명하면서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울리히 벡의 개별화, 마사 너스봄의 ‘선의 취약함’, 찰스 테일러의 ‘인정의 정치’ 등의 고급 사회문화이론의 렌즈를 총동원한 지적 성실함이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점은 저자가 칭송한 윈프리의 대중친화적 화법까지는 터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원제 ‘Oprah Winfrey and the Glamour of Misery’(2003)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