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진경]여성연합, 당당해지려면

  • 입력 2006년 7월 4일 03시 12분


제11회 여성주간(1∼7일)이다. ‘여성에게 도약을! 가족에게 희망을!’이란 슬로건 아래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2일 때맞춰 발표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사상 처음 50%를 넘었다. 가정에만 머물던 여성들이 사회 각계에 진출해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고 2008년부터는 가부장제의 상징인 호주제도 폐지된다.

이번에 국민훈장을 받는 이현숙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이사의 말대로 이 같은 변화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980년대까지도 사회에서는 가정폭력이나 호주제 폐지 요구를 ‘일부 몰지각한 여성들의 과격한 주장’으로 몰아붙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 시절 진보적 여성단체들은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대책활동과 KBS 시청료 거부운동을 전개하면서 힘을 합쳤다. 이렇게 해서 보수적 여성단체 협의체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의 대안으로 1987년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이 만들어졌다.

민주화운동과 함께 커 온 여성운동은 세상을 참 많이 바꾸어 놓았다. 여성연합은 차별받고 소외받는 여성들 곁에서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당시 기자들은 여성연합에서 열댓 명이 모여 성명서만 낭독해도 달려갔다. 한명숙 지은희 이미경 이경숙 김희선 씨는 이곳서 활동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가 됐다.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어 이들은 총리, 장관, 국회의원이 됐다. 여성연합도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서 거침없는 목소리를 낸다. 여성의 힘이 커지고 시민단체가 정책결정에서 중요해진 덕분이다.

이러한 여성연합이 주축이 돼 거액의 빌딩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15개 여성단체가 공동으로 입주할 예정이라는 60억 원짜리 ‘여성미래센터’ 얘기다.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과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 등 여성연합 출신 여성계 인사뿐 아니라 청와대와 행정부 인사, 시민단체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까지 열었다고 한다.

여성연합은 이들이 정부인사의 자격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정부 및 주요 사회분야 진출이 여성운동의 성과로 해석돼야 한다고도 한다.

맞는 말이다. 여성들은 남성중심 사회에 더 많이 진출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비리를 저지를 만한 권력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여성들은 남성보다 개혁적이고 깨끗하다.

그러나 건립추진위원회에는 정부 측 고위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중견기업 대표는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비공개로 연 발족식 당일 하루 약정액은 11억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끼리끼리 봐주기식 권력의 행태가 재연될 여지가 많은 것이다. 더구나 여성연합은 권력을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이기도 하다.

여성 근로자 10명 중 4명이 임시직과 일용직이다. 지방의회 의원의 여성비율은 겨우 14.5%, 국회의원은 13.0%다.

아직도 여성에게 빗장을 걸어 잠그는 가부장적 사회를 향해 설득하고 대화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문을 두드리고 떳떳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미래센터 건립 계획은 재검토돼야 한다. 우리의 딸들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김진경 교육생활부 차장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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