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대학생이 길을 떠난다. 미국 뉴욕에서 애리조나로. 섬약한 학자 타입의 유대인 일라이, 상류층 자식으로 부유하게 자란 티모시, 시인 지망생이자 동성애자인 네드, 촌구석 출신으로 명민하고 야심 찬 올리버. 도무지 친해지지 못할 것 같은 남자들이 자동차 한 대에 올라탄 데는 목적이 있다. 영생을 얻겠다는 것.
로버트 실버버그는 1970년대 SF소설의 황금기를 연 거장으로 불린다. 권위 있는 SF소설상인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다섯 번씩 받았다. ‘두개골의 서’는 작가가 특별한 애착을 가졌던 작품. 한 생애 여러 작품으로 그렇게 많은 상을 탔음에도, 저자는 ‘두개골의 서’가 상을 못 받고 후보에만 머물렀다며 늘 탄식했을 정도다.
일라이가 도서관에서 찾아낸 고문서 ‘두개골의 서’에는 영생을 얻는 길이 나와 있다. 애리조나의 수도원에 가면 영생을 주는 수도사들이 있다는 것. 조건이 있다. 넷이 짝 지어 가야 한다. 그중 둘이 죽어야 한다. 어찌어찌 수가 채워지긴 했지만 저마다 속내가 있다. 일라이는 고문서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학자적 열망 때문에, 올리버는 어렸을 적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시달려 온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자, 네드는 연모하는 올리버를 따라서, 티모시는 호기심에다 왕따 되기 싫어서다.
소설 절반 정도의 분량은 3박 4일간의 여행길, 나머지 절반은 수도원에서 보낸 일주일의 시간이다. 여행길에서는 영생에 대한 젊은이들의 탐욕이, 수도원 장면에서는 수도원의 비밀스러운 제의가 묘사된다.
불멸을 추구한다는 고전적인 SF 소재를 택했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대단히 문학적이다. 실제로 책이 나왔을 때 일반 독자들은 SF소설로, SF 독자들은 주류 문학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 책은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초상으로도 읽힌다. 상류층 백인의 클럽문화, 유대인과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마약과 섹스에 탐닉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여행길에서 묘사된다. 우주선도, 로봇과 타임머신도 찾아볼 수 없다. 더욱이 결말에 이르면 2만5000년을 살아왔다는 수도사들이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품게 한다(그렇다면 SF가 아니라 대단히 풍자적인 본격소설이 될 것이다). 이런 다양한 독법이 ‘두개골의 서’의 매력이다.
잔인한 장면이 거의 없는데도 소설은 시종일관 으스스하다. 분량도 만만치 않은 데다 요즘 책답지 않게 활자도 작고 빽빽하다. 그런데 잘 읽힌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다. 원제 ‘The Book of Skulls’(1972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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