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5년 佛정부 그린피스선박 폭파공작

  • 입력 2006년 7월 1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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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기게 핵실험을 방해하는 그린피스. 프랑스엔 눈엣가시였다. 1985년 그들이 남태평양 모루로아 섬의 프랑스 핵실험장을 아예 봉쇄하겠다고 나섰다. 게다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폴리네시아인들은 독립을 위해 그들과 연합 시위를 벌일 태세였다. 프랑스로선 참기 어려웠다. ‘공작’이 필요했다.

프랑스는 그린피스의 ‘주력’ 무지개 전사(레인보 워리어)호가 기항할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그린피스 지부에 정보원을 심어 뒀다.

7월 7일 무지개 전사호가 오클랜드 항에 들어왔다. 무지개 전사호는 여기서 수십 척의 선단을 이끌고 모루로아로 갈 예정이었다.

프랑스 요원 10여 명도 오클랜드에 와 있었다. 10일 오후 8시 30분. 한 요원이 무지개 전사호로 헤엄쳐 갔다. 그는 기관실 외벽과 스크루 근처에 폭탄을 장치하고 1분 간격으로 터지도록 조정했다. 배는 못 쓰게 만들되 사람은 해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오후 11시 38분 기관실 쪽에서 폭탄이 터졌고, 배가 전복되려 하자 선장은 대원들에게 배에서 내리라고 명령했다. 사진작가 페르난두 페레이라는 카메라를 꺼내 오려고 선실로 내달렸다. 그때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배는 페레이라를 태운 채 가라앉았다.

뉴질랜드 사상 첫 테러였다. 경찰은 기민하게 대처했으며 시민의 제보가 잇따랐다. 보트클럽 경비원은 잠수복 차림의 수상쩍은 남자가 탄 자동차 번호를 알려 왔다. 경찰은 렌터카임을 확인하고 차를 반납하려던 ‘부부’를 체포했다. 프랑스 대외안전총국(DGSE) 요원인 그들은 부부로 가장한 채 위조 스위스 여권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부인했으나 르몽드는 9월 17일 DGSE 책임자 피에르 라코스트 장군과 샤를 에르뉘 국방장관이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이틀 뒤 라코스트는 해임됐고, 에르뉘는 사임했다. 22일 로랑 파비우스 총리는 프랑스의 소행이라고 털어놨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범죄요,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20년 만인 지난해 7월 10일에는 미테랑이 ‘미친 짓’을 승인했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는 빗발치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그린피스는 세계인의 비상한 관심을 끌며 환경단체로서 우뚝 서게 됐다.

‘못 쓰게’ 된 무지개 전사호는 1987년 12월 마타우리 만 깊은 바다에서 물고기들의 안식처가 됐다. 1989년 7월 10일엔 어선을 개조한 새로운 무지개 전사호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진수됐다. 새 무지개 전사호는 ‘무지개는 침몰되지 않는다’며 핵실험 반대 ‘전투’에 복귀했고, 프랑스는 1996년 모루로아 핵실험장을 폐쇄했다. 무지개 전사들의 승리였다.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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