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그린피스의 ‘주력’ 무지개 전사(레인보 워리어)호가 기항할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그린피스 지부에 정보원을 심어 뒀다.
7월 7일 무지개 전사호가 오클랜드 항에 들어왔다. 무지개 전사호는 여기서 수십 척의 선단을 이끌고 모루로아로 갈 예정이었다.
프랑스 요원 10여 명도 오클랜드에 와 있었다. 10일 오후 8시 30분. 한 요원이 무지개 전사호로 헤엄쳐 갔다. 그는 기관실 외벽과 스크루 근처에 폭탄을 장치하고 1분 간격으로 터지도록 조정했다. 배는 못 쓰게 만들되 사람은 해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오후 11시 38분 기관실 쪽에서 폭탄이 터졌고, 배가 전복되려 하자 선장은 대원들에게 배에서 내리라고 명령했다. 사진작가 페르난두 페레이라는 카메라를 꺼내 오려고 선실로 내달렸다. 그때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배는 페레이라를 태운 채 가라앉았다.
뉴질랜드 사상 첫 테러였다. 경찰은 기민하게 대처했으며 시민의 제보가 잇따랐다. 보트클럽 경비원은 잠수복 차림의 수상쩍은 남자가 탄 자동차 번호를 알려 왔다. 경찰은 렌터카임을 확인하고 차를 반납하려던 ‘부부’를 체포했다. 프랑스 대외안전총국(DGSE) 요원인 그들은 부부로 가장한 채 위조 스위스 여권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부인했으나 르몽드는 9월 17일 DGSE 책임자 피에르 라코스트 장군과 샤를 에르뉘 국방장관이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이틀 뒤 라코스트는 해임됐고, 에르뉘는 사임했다. 22일 로랑 파비우스 총리는 프랑스의 소행이라고 털어놨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범죄요,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20년 만인 지난해 7월 10일에는 미테랑이 ‘미친 짓’을 승인했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는 빗발치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그린피스는 세계인의 비상한 관심을 끌며 환경단체로서 우뚝 서게 됐다.
‘못 쓰게’ 된 무지개 전사호는 1987년 12월 마타우리 만 깊은 바다에서 물고기들의 안식처가 됐다. 1989년 7월 10일엔 어선을 개조한 새로운 무지개 전사호가 독일 함부르크에서 진수됐다. 새 무지개 전사호는 ‘무지개는 침몰되지 않는다’며 핵실험 반대 ‘전투’에 복귀했고, 프랑스는 1996년 모루로아 핵실험장을 폐쇄했다. 무지개 전사들의 승리였다.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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