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11>“조선과 중국,근세 오백년…”

  • 입력 2006년 7월 13일 03시 00분


《중국 일본과 비교해서 보면 조선 중간 단체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통일적인 아이덴티티의 결여일 것이다. 중국에서의 기(氣), 일본에서의 천황제에 필적하는 존재를 갖지 않은 조선에서는 다양한 중간 단체를 관통하는 공통의 원리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비한족(非漢族), 반일(反日)이라는 민족주의의 언설(言說)이 오늘날에도 강조되는 것은 통일적인 아이덴티티의 창출을 위한 노력이라고 보여진다. -본문 중에서》]

최근 중국의 경제적 팽창,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한 중 일 등 동아시아 삼국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 와중에 동아시아의 미래, 특히 중국과 일본의 패권 경쟁 속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아시아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안목과 시야를 확보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역사학계에서도 민족과 국경을 넘어 지역 전체를 역사의 시각에 놓는 새로운 역사방법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비록 일본 학자가 쓴 것이지만 한국의 조선시대와 중국의 명청시대를 국제적 시야에서 조망한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는 이 같은 새로운 조류를 대변하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이 책은 일본의 중앙공론사에서 기획한 ‘세계의 역사’ 총서 30권 중 한 권으로 집필됐다. 동아시아 근세사에 정통한 기시모토 미오(岸本美緖) 도쿄대 교수와 미야지마 히로시(宮島博史·55)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가 전공 분야인 명청과 조선시대를 나누어 썼으며 일본 독자를 겨냥한 동양사 개설서이지만 우리에게도 유익한 역사책이다.

저자들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전문적이지 않으면서도 한국과 중국의 ‘전통’이 형성되던 조선과 명청시대의 역사를 최신 연구 성과에 맞춰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통사를 다룬 여타의 책에서 흔히 범하는 정치사에 치우친 서술을 줄이고 사회와 문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자 고심한 것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조선사와 명청사의 흐름을 개별적이고 분산적인 것이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다른 나라와의 관련 속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려와 조선의 성립 시기가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적 대변동기였음을 상기한다면 한국사를 일본사 및 중국사와 맞물린 동아시아사의 틀에서 파악하고자 한 저자들의 시도는 매우 신선하다.

당시 조선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를 예로 들면서 15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이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의 동향을 이해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평가가 그렇다. 16세기 일본에서 급증한 은 생산과 중국의 수요 증대가 계기가 되어 동아시아의 국제적 상업이 활성화되면서 일본의 군사적 팽창이 임진왜란의 발발로 이어진다는 설명도 저자들이 국가사를 넘어 지역사와 세계사를 꿰뚫는 안목이 없다면 좀처럼 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지난 세기 역사학 연구는 우리 역사를 민족이나 국가 단위로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이처럼 일국사적 관점에서 진행된 역사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기존의 조선시대 역사상을 반성하고 앞으로 한국사 연구의 시각을 확대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 책은 음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심재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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