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이 씨 등이 제기한 피폭자 건강관리수당 미지급분 청구소송 최종심에서 “수당 지급 의무는 국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씨는 평생의 염원을 이루지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이 씨는 숨을 거두기 전 장남 태재(47) 씨에게 그동안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해 달라고 당부한 뒤 “그나마 양심이 남아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일본 사법부마저 전쟁 책임을 회피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 실망스럽고 납득할 수 없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태재 씨는 “평생을 싸워 오신 아버지가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없게 된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징용돼 17세 때 나가사키(長崎)에서 원폭 피해를 본 이 씨는 1945년 12월 한국으로 돌아온 뒤 후유증에 시달렸다. 1994년 7월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원폭피해자로 인정받았고 피폭자 수당 수령에 필요한 건강수첩을 취득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한국으로 출국했다는 이유로 수당 지급이 거부되자 건강관리수당 미지급분 청구 소송을 냈다. 법정투쟁을 벌인 이 씨는 결국 2001년 12월과 2003년 2월 나가사키 지방법원과 후쿠오카(福岡) 고등법원에서 차례로 승소했다.
이 판결로 한국 내 원폭피해자들에게도 건강관리수당과 치료비 일부가 지원되기 시작하는 등 원폭 피해 배상의 새로운 전기가 됐다.
그러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하급심의 결정을 뒤집는 판결을 내놓아 원폭피해자의 염원을 외면했다. 이 씨는 재판과 원폭피해 배상을 위해 최근까지 100차례 넘게 일본을 오갔다. 또 지난해 초부터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장까지 맡으면서 강행군으로 건강이 악화돼 지난달 8일부터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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