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

  • 입력 2006년 7월 15일 03시 00분


헬렌 켈러는 소리가 영상보다 더욱 다채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로 귀는 죽음의 통로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이렌은 해안에 앉아 지나가는 배를 향해 감미로운 노래를 부른다. 그녀 옆에는 백골이 쌓여 있다. 세이렌이 부르는 노래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없는 사람은 귀를 꼭 막는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그린 ‘세이렌’(1900년). 그림 제공 푸른숲
헬렌 켈러는 소리가 영상보다 더욱 다채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로 귀는 죽음의 통로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세이렌은 해안에 앉아 지나가는 배를 향해 감미로운 노래를 부른다. 그녀 옆에는 백골이 쌓여 있다. 세이렌이 부르는 노래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없는 사람은 귀를 꼭 막는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그린 ‘세이렌’(1900년). 그림 제공 푸른숲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샤오춘레이 지음·유소영 옮김/372쪽·1만3000원·푸른숲

과거 여성들에게 높게 올린 머리는 매력의 상징이었다. 당나라 여성들은 머리를 30cm 이상 올렸고 숱이 모자라면 검게 칠한 나무나 철사로 가발을 만들어 머리에 붙였다. 18세기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영국 여성의 가발 중엔 높이 120cm짜리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머리카락은 자유의 상징, 문화의 징표다. 중원에 들어온 만주인이 삭발령을 내리자 중국인은 “황제와 나라를 위해 싸울 때보다 더 용감하게 머리카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머리카락 때문에 때로 사람은 목까지 내놓는다. 인류만이 이처럼 “고귀하고 황당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작가인 저자는 ‘인간은 누구인가’를 직접 묻는 대신, 머리 눈썹 눈빛 코 체취 귀 혀 피부 목 어깨 유방 허리 배 무릎 발 등 신체 각 부위의 미시사를 통해 인간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그간 신체의 문화사를 다룬 책들은 대개 서양 위주였지만, 이 책은 중국 고사부터 프랑스 문학, 당나라 시부터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동서양에서 몸의 역사를 채집한다.

잡학사전의 자잘한 재미와 문학적 시각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얼굴 유방처럼 주목받는 신체 부위뿐 아니라 눈빛 무릎 혀처럼 주목받지 못하던 신체 부위나 그 특징까지 아우를 만큼 잡학적 지식의 폭이 넓다.

저자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무기인 눈빛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한 힘을 갖고 있다고 소개한다.

고대 중국의 미남 위개의 경우 어디를 가든지 그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법석였다. 원래 몸이 허약했던 그가 세상을 뜨자 사람들 사이에선 “사람들의 눈길이 위개를 죽였다”는 말이 나돌았다.

눈언저리가 찢어지도록 질긴 눈싸움 끝에 호랑이를 이긴 진나라 사람의 이야기, 세르비아 고사에 나오는 눈빛 센 거인의 이야기 등 잡학을 풀어 놓던 저자는 중국 현대사의 아픈 상처도 눈빛으로 설명한다.

문화혁명 당시 자아비판 대회의 단상에 올라 비판을 받던 사람들은 사나운 눈초리와 비난의 손가락질을 견뎌야 했다. 저명한 문인 라오서(老舍)는 비판 투쟁대회에서 돌아온 뒤 호수에 몸을 던졌다. 사람들이 성난 얼굴로 노려보는 사나운 눈초리 앞에서 생명의 힘이 소진되어 죽음을 향한 용기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저자는 이 책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존재인 인간에게 바치는 로망스”라면서 “인문학적 연구 논문이나 보고서가 아니라 ‘문학’으로 썼다”고 밝혔다.

신체 각 부위에 대한 묘사를 읽다 보면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배를 “육체의 가장 깊은 어둠, 즉 굶주림과 빈곤, 실패가 자리하고 있는 공간”으로 파악하고, 등을 “어디에도 방위를 위한 전략적 요지가 보이지 않는, 넓은 평원과 같은 곳”이라고 불렀다. 원제 ‘우리는 피부 안에 살고 있다(我們住在皮膚裏)’(2002년).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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