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 오 티’로 읽어야 할지 ‘핫’으로 읽어야 할지 몰랐던 그들의 첫 무대. 1996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여성 MC였던 영화배우 김혜수는 ‘핫’이라 외쳤지만 그 순간은 ‘대한민국 아이돌 스타 왕국(王國)’의 시작을 알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가요 시장의 주 소비층을 10대로 끌어내린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1996년에 등장한 ‘H.O.T.’를 비롯한 10대 아이돌 그룹은 가요계 최대 ‘블루오션’으로 통했다. ‘젝스키스’ ‘S.E.S’ ‘핑클’ ‘신화’ ‘god’ 등으로 이어진 아이돌 그룹 왕국이 ‘건국’ 10년 만에 ‘동방신기’ ‘SS501’ ‘슈퍼주니어’ 등 세대교체를 맞으며 ‘재건(再建)’에 들어갔다.
○ 제2차 아이돌 공습
2006년 현재 가요계의 이슈 메이커들은 대부분 아이돌 그룹. 이미 지난해부터 인기를 모은 SM엔터테인먼트의 5인조 남성 그룹 ‘동방신기’와 DSP 소속의 ‘SS501’은 10년 전 ‘H.O.T.’와 ‘젝스키스’의 대결 구도에 비견된다.
13인조 남성 그룹 ‘슈퍼주니어’는 ‘X맨’ ‘연애편지’ 등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팬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발표한 새 싱글 ‘U’는 한 달간 2만5000장 이상의 판매(한터정보시스템 집계)를 기록하며 6월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 여성 4인조 그룹 ‘천상지희’, 미디엄 템포 댄스곡 ‘Mr.S.N.A’를 발표한 5인조 그룹 ‘S.N.A’ 등도 인기를 얻고 있다.
막강한 기획사를 등에 업은 신생 아이돌 그룹들도 데뷔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양현석 씨가 만든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는 6년간 공을 들인 6인조 아이돌 그룹 ‘빅뱅’을 다음 달 데뷔시킬 예정이다. ‘SG워너비’가 소속된 GM기획 역시 1년간 키운 아이돌 그룹을 가을께 공개할 예정이다.
양현석 씨는 “가요계의 새로운 시장은 노래 외에도 춤, 개인기 등 스타성 있는 10대들이 장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내용 아이돌 그룹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 GM의 김광수 이사는 “결성 당시부터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초특급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 1세대는 모르는 초라한 2세대?
2세대 아이돌 그룹은 10년 전 선배 아이돌 그룹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H.O.T.’ ‘언타이틀’ ‘영턱스클럽’ 등 과거 아이돌 스타들이 힙합바지나 면 티셔츠 등을 입고 귀여운 모습을 강조한 반면 현재는 말끔한 정장 차림에 댄디한 헤어 스타일, 적당한 근육을 자랑하거나(남성그룹) 핫팬츠 차림으로 ‘털기춤’을 추는(여성그룹) 등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100만 장의 음반 판매, 가요 차트 1위 등 나름대로 음악적 업적을 기록했지만 현재의 아이돌 스타들은 가수로서의 활동보다 드라마, 영화 등 ‘엔터테이너’ 이미지가 월등히 높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이사는 “한국에서 가수만 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며 “현재 대중은 다방면으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는 ‘TV 뮤지컬 배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의 배경에는 허물어진 음반 시장이 있다. 10년 전 아이돌 그룹이 가요계의 ‘황금어장’이었다면 현재 아이돌 시장의 위상은 그나마 유일하게 ‘돈 되는’ 시장 정도다. 현재의 2세대 아이돌 그룹 붐은 제작자, 기획사엔 마지막 남은 불씨와도 같은 것이다.
음악평론가 성우진 씨는 “과거 아이돌 그룹의 경우 세대를 꿰뚫는 대표곡이 한 곡 이상은 나왔지만 지금의 아이돌 그룹에는 ‘노래’가 없다”며 “음악적 위상은 곤두박질쳤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출연에 수입을 의존하는 등 10대 안에서만 맴도는 ‘초라한 아이돌’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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