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 입력 2006년 7월 15일 03시 00분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박지향 지음/536쪽·2만3000원·기파랑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영국적인 것(Britainess) 또는 잉글랜드적인 것(Englishness)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유럽 섬나라의 특징이 한국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이 질문은 바로 한국적인 것(Koreaness)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영국은 오늘날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조류의 원형을 이루는 나라다. 보수주의 하면 떠오르는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영국인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미 1500년 런던주재 베네치아 대사가 “잉글랜드인들은 자기 애착이 너무 강하고, 자기들 것은 무엇이나 좋아한다”고 갈파했듯이 영국인의 자기 것에 대한 애착은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영국인은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하던 대영제국 시절에도 식민지는 물론 유럽대륙과도 차별성을 강조하는 일국주의를 고수했다. 즉 자유를 사랑하면서도 질서와 전통을 존중하고, 추상적 원칙보다는 경험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중시하고, 과묵하면서도 근면 자조의 정신이 뛰어난 영국적 특징은 독특한 역사와 경험을 지닌 영국인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술을 찾으러 이탈리아를 가듯 이상적 정부를 발견하려면 잉글랜드로 가라”는 말을 낳을 만큼 제도의 우월성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졌다. 입헌군주제, 불문헌법, 독특한 양원제, 국교회(성공회)는 영국적 풍토에서만 가능하다는 자부심이다. 이런 영국적 예외성에 대한 자부심은 미국으로 이식돼 ‘미국예외주의’의 원형이 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보수주의의 뿌리로서 영국적인 것이 어떻게 구성돼 왔는지를 흥미롭게 추적했다. 영국을 상징하는 캐릭터로서 브리타니아와 존 불의 역사에서부터, 영국적인 특징으로서 전원주의의 재발견, 축구 럭비 크리켓 테니스 골프 등 근대 스포츠 종가의 전통과 영국적 국민성의 함수관계, 로빈 후드와 엘리자베스여왕에 대한 국민영웅화 담론의 이면, 보편주의를 추구한 유럽 지식인들과 달리 애국주의적 성향이 뚜렷했던 영국 지식인들의 풍모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저자(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번역한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이 그런 영국성의 허구를 폭로하는 데 충실했다면, 이 책은 ‘영국성’이 정치 사회적 필요성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역동성에 주목한다. 이는 결국 오늘날 한국 보수주의에서 진정으로 결여된 부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기도 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세계 보편의 가치 말고 한국 보수주의가 지켜야 할 ‘한국적인 것’은 과연 무엇인가.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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