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독배를 입술에 가져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잔을 비우셨다네. 그 순간 우리는 울음을 펑펑 쏟아 내기 시작했지. 그러자 선생님은 ‘이 사람들아! 사람이 죽을 때는 조용한 가운데 죽는 것이 제일 좋다네. 용기를 가지고 조용한 태도로 지켜봐 주시게’라고 말하셨지. 이후 다리가 뻣뻣해진다며 반듯이 누우셨고 경직이 사타구니에 이르자 얼굴을 덮던 이불을 치우고 이렇게 말했지. ‘수탉 한 마리 값을 치르지 않은 것이 있다네. 잊지 않고 갚아 주기 바라네.’ 그분이 남긴 마지막 말이네.”(플라톤)
역사를 소재로 한 책들의 상당수가 ‘시간 여행을 떠나 보자’는 문구를 즐겨 쓰지만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여행이 여행 같지 않고 지겨운 문자 텍스트로 남는 것은 ‘디테일’이 없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역사책에서 ‘우리 기병대가 적의 우익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고만 표현한다면, 무슨 시간 여행이 가능하겠는가.
영국 옥스퍼드대 영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역사 기록의 무미건조함을 극복하기 위해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원래 현장에 있으면서 기록을 남겼던 사람의 지식, 추측, 직관, 문장력보다 ‘정말 내 눈으로 직접 봤다’는 현장감에 초점을 맞추고 그런 대목만 추려 낸 것. 직접 목격한 자의 가감 없는 솔직함만이 신뢰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현장 기록은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기록자의 희로애락과 주관적 언급까지 담고 있다. 그래서 숨이 가쁘고 주관적이며 불완전한 목격자의 모습까지 담긴 ‘르포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수업시간에 암기하기에 바빠 머릿속에 건조한 단어로만 남아 있는 백년전쟁, 워털루전쟁, 프랑스대혁명, 제1, 2차 세계대전,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같은 역사적 현장뿐 아니라 비단 스타킹에 모피 코트를 입고 사형장으로 걸어간 마타하리의 처형 장면, 원자 폭탄을 싣고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는 폭격기 비행사가 폭탄 투하 직전 동료와 나누는 아이로니컬한 대화 등 사건 속 인물의 소소한 뒷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실제 현장 주인공들의 눈물, 땀, 피 등 짭짜름한 맛이 혀끝에 느껴질 정도다. 흔히들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라’고 하지만, 이 책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원제 ‘The Faber Book of Reportage’(1987년).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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