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선 교수 “한국 팔일무 독창성은 文武의 조화”

  • 입력 2006년 7월 18일 03시 05분


임학선 교수
임학선 교수
팔일무 중 문무의 춤사위. 천-지-인의 합일을 나타내기 위해 왼손에 든 약(피리)과 오른손에 든 적(꿩 깃털)을 교차시키고 있다.
팔일무 중 문무의 춤사위. 천-지-인의 합일을 나타내기 위해 왼손에 든 약(피리)과 오른손에 든 적(꿩 깃털)을 교차시키고 있다.
성균관대 무용학과 학생들이 펼치고 있는 팔일무 중 무무의 한 춤사위. 왼손으로는 간(방패)을 세워들면서 오른손으로는 척(도끼)을 들고 있다.
성균관대 무용학과 학생들이 펼치고 있는 팔일무 중 무무의 한 춤사위. 왼손으로는 간(방패)을 세워들면서 오른손으로는 척(도끼)을 들고 있다.
해마다 봄 가을이면 성균관의 공자사당 문묘(文廟)에서는 공자를 기리는 석전대제(釋奠大祭·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가 치러진다. 이 제례에서 가장 화려한 볼거리는 팔일무(八佾舞)라는 춤. 가로와 세로로 8명씩 줄지어 서 64명이 함께 추는 이 춤은 공자의 예악(禮樂)사상을 형상화한 춤으로만 알려져 있다.

이 팔일무의 기원과 변형에 대해 연구해온 학자가 있다. 지난해 팔일무에 대한 기록을 담은 17종의 문헌을 추적해 ‘문묘일무의 도해’를 펴낸 데 이어 최근 이를 바탕으로 ‘문묘일무의 이해’를 펴낸 임학선(무용학) 성균관대 교수.


“한국에서는 팔일무를 비롯해 석전대제의 제의가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보다 더 잘 보존되고 있다는 믿음이 있는데, 이런 통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임 교수는 전통 춤의 원형을 현대 창작무용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펼쳐왔다. 임 교수와 제자들은 2000년부터 석전대제에서 팔일무를 공연했다.

“일무는 제례용이 아니라 국가의례용 춤이었습니다. 일무는 ‘줄을 지어 추는 춤’을 뜻하는데 천자 앞에서는 팔일무, 제후 앞에서는 육일무, 대부 앞에서는 사일무 하는 식으로 줄의 수를 통해 춤의 등급을 규정지은 형식을 말할 뿐 춤의 내용을 규정하는 장르의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신분에 따라 춤이 두 줄씩 줄어든 것은 음양의 춤사위가 두 줄 씩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팔일무는 송나라 때 재정립된 것. 송 철종(1089년) 때 섭방(葉防)이라는 인물이 고대의 일무를 바탕으로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라는 새로운 일무의 춤사위를 확립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 명·청대 중국에서는 문무만 추었던 반면 한국에서는 문무와 무무를 함께 추는 전통이 이어져 왔다는 것.

“문무와 무무가 한국에 전해진 것은 고려 예종 11년(1116년) 때입니다. 이후 고려와 조선에서는 문무와 무무의 전통을 이어왔으나 중국에서는 문무만 전해오다가 그나마 청대 때 변형됐습니다.”

그러나 임 교수는 한국 팔일무가 원형에 충실하다는 주장을 펴기에는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문무는 피리와 꿩 깃털을 쥐고 추고, 무무는 도끼와 방패를 들고 춥니다. 현재의 무무는 도끼와 방패를 들었을 뿐 춤사위는 문무의 동작을 그대로 쓰고 있어 엉성한 부분이 많습니다. 또 천(天)-지(地)-인(人)의 합일을 나타내는 십자동작에서 방패를 세로로 세우고 도끼를 가로로 눕혀야 하는데 한국 팔일무는 그 반대입니다.”


임 교수는 두 연구서를 바탕으로 빠르면 2007년경 팔일무를 원형에 더 가깝게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5월 창립된 석전학회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은 문묘제례의식의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입니다. 문무와 무무를 같이 해온 한국 팔일무의 독창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원형에 대한 섬세한 복원이 필요합니다.”

임 교수는 그 과정의 하나로 팔일무를 현대무용과 접목시킨 90분짜리 창작무용극 ‘공자’(2004년 작)를 10월 한-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맞아 파리 유네스코회관에서 선보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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