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고구려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임승환 조선족 소설가

  • 입력 2006년 7월 1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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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역사 소설가인 임승환 씨가 헤이룽장 성 징보후에서 고구려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 다녔던 곳과 들었던 민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징보후는 수천 년 전 화산 폭발로 생긴 호수로 고구려와 발해에 관련된 많은 설화를 품고 있는 곳이다. 무단장=구자룡  기자
대하역사 소설가인 임승환 씨가 헤이룽장 성 징보후에서 고구려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 다녔던 곳과 들었던 민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징보후는 수천 년 전 화산 폭발로 생긴 호수로 고구려와 발해에 관련된 많은 설화를 품고 있는 곳이다. 무단장=구자룡 기자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동강난 분단 현실에서 고구려는 우리 민족의 역사 무대가 넓은 대륙에서 웅비하던 때다.

그 역사의 무대에서 나고 자라 ‘장구한 고구려 역사’를 소설로 담아내려는 중국 조선족 동포 대하 역사 소설가가 있다. 주인공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조선민족출판사의 부사장 격인 임승환 부편심(56).

그의 작품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고 상당수 작품은 탈고는 했으나 출판되지도 못해 그는 국내에서는 무명에 가깝다. 하지만 그가 옛 고구려 강토를 한 땀 한 땀 짚어가며 적어 가는 고구려 역사소설은 당시의 흙이 묻어 있는 것만큼이나 생생하고 투박하다고 중국 현지 연변작가협회 관계자는 평가했다. 국내 일부 작가와 학자도 그에게서 자료 도움을 받고 있다.

최근 임 부편심을 그의 집이 있는 헤이룽장 성 무단장(牧丹江)에서 만났다.

그가 태어나 자란 헤이룽장 성 닝안(寧安) 시 보하이(渤海) 진은 옛 발해국 수도인 상경용천부가 있던 곳. 그는 어려서부터 한족(漢族) 만주족 몽골족 선비족 허저족 출신의 수많은 민간 구술가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고구려 발해 흉노 선비 옥저 말갈국의 흥망사에 대한 글을 읽으며 자랐다.

1977년 베이징(北京) 중앙민족학원을 졸업하고 헤이룽장출판사에서 줄곧 근무하며 조선족 관련 출판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처음에는 신화, 전설, 민담 수집가에 가까웠다.

“동북 3성 수백 곳의 조선족 한족 만주족 마을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때 모은 신화, 전설, 민담 등을 묶어 정리한 것이 ‘경박호 전설’ ‘흑룡강 전설’ ‘백두산 전설’ ‘흥개호 전설’ 등 수십 편의 전설 민담집입니다.”

그러던 임 부편심은 지린(吉林) 성 허룽(和龍) 현 출신으로 민간구술가로 유명했던 최세륜 선생의 아들이자 소설가인 최금산과 1984년 만났다. 두 사람은 고구려 역사를 소설로 써 보자고 의기투합한다.

하지만 워낙 자료가 방대하고 고구려의 역사 무대가 넓어 첫 결실을 본 것은 15년이 지난 1999년으로 ‘동명성왕’ 상하 두 권(90만 자)이 나왔다. 현지에서의 폭발적 인기는 물론이다.

두 사람은 대하소설 시리즈 제목을 ‘고구려전’으로 잡고 큰 업적을 남긴 왕들부터 소설화해 나갔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까지 공동작업으로 ‘광개토대왕’(150만 자), ‘장수왕’(125만 자), ‘유리왕’(125만 자) 등을 탈고해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은 ‘산상왕’ ‘동천왕’ ‘을지문덕’ ‘연개소문’ ‘바보 온달’ 등 총 60여 권에 1500만 자가량을 쓰되 별다른 업적이 없거나 폭군 등은 제외하기로 했다. 그런데 최금산 작가가 지난해 6월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임 부편심 혼자 남았다.

그는 “탈고 시간이 다소 늦어지고 내 평생에 출판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 생각하고 계획한 원고들을 정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뜻있는 출판사나 재단이 출판 의사를 보내 오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런 글이 있는지도 잘 모를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그 대신 자신의 작품 ‘동명성왕’이 고구려 개국 일자를 통설인 기원전 57년이 아닌 기원전 277년으로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논란은 있습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 비문에 광개토대왕이 고주몽의 17대손으로 되어 있는 반면 삼국사기에는 12대손으로 되어 있는 등 기존 고구려사 왕 연대표에는 나오지 않는 4, 5명의 임금이 새로 중국 역사에서 발견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구려전’ 첫 작품이 나온 후 출판되지도 못하는 글을 계속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주위에서는 격려하면서도 마무리 짓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도 한다.

헤이룽장출판사는 ‘동명성왕’ 출판 권두언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오직 우리 민족을 위한 창작의 길에 인생의 영광과 보람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그들이기에 명리와 금전과는 담을 쌓고 천리답사 길의 초가삼간에서 촌로들의 구수한 이야기와 항아리의 향기로운 술로 피곤한 몸을 달래고 무수한 밤을 새우면서 피와 땀으로 후세에 길이 전할 역작을 줄기차게 써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밝다.

그는 “중국 내 고구려 영토 곳곳을 다니다 사료 속에 기술된 것과 비슷한 지명이나 지형 등을 만나면 과거로 되돌아간 듯 반갑고 기뻤다”며 글 쓰는 보람을 이야기했다.

임 부편심은 “역사소설은 중국 26사(史) 등 사료와 전설집, 신화는 물론 역사 현장에서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의 구전 등도 모두 포함해서 과거 역사의 얼개를 잡은 후 작가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형상을 빚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단장=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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