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융’ 하며 발사된 불꽃의 잔영이 꼬리처럼 길게 남아 하늘을 향해 승천하는 금빛 비늘의 용처럼 보인다. 잠시 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 용’은 파랗고 빨간 불꽃이 되어 어두운 하늘 가득 퍼진다. 지름이 300m나 되는 불꽃의 화려한 자태에 반한 구경꾼들은 탄성을 연발한다.
해마다 7월 중순이 되면 무더위에 지친 일본 사람들의 입에 빈번히 오르내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하나비(花火)’. 우리말로 옮기면 불꽃놀이다.
서점 진열대에는 지역별로 가볼 만한 하나비 행사를 소개하는 책자들이 빼곡히 들어선다. 사람들은 예전 기억을 떠올려 하나비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면서 ‘불꽃놀이 순례’ 스케줄을 짜기 시작한다.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의 하나비 시즌이 되면 도쿄를 비롯해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하나비 대회가 열린다. 동네의 작은 불꽃놀이는 소박한 맛을 느낄 수 있고, 유력 신문사가 주최하는 대형 불꽃놀이 축제에서는 웅장한 스케일에 압도된다.
도쿄나 요코하마와 같은 대도시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일본 전국에서 몰려든 불꽃놀이 장인들이 각자의 ‘작품’을 출품해 누가 더 독특하고 아름다운 불꽃을 만드는지 경쟁한다. 장인들의 솜씨를 감상하며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유명 하나비 행사에는 매년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가장 인기 있는 불꽃놀이는 도쿄의 스미다가와 강변에서 펼쳐지는 ‘스미다가와 하나비 대회’다. 올해로 29회를 맞는 이 대회에서는 약 2만 발의 불꽃이 발사돼 장관을 연출하는데 지난해의 경우 95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같은 도쿄에서 열린 ‘에도카와구 하나비 대회’에도 90만 명이 현란한 쇼를 보기 위해 운집했다.
10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한순간을 즐기기 위해 모이기 때문에 행사장 주변의 교통은 완전히 마비된다. 몇 년 전에는 행사장에 입장하려던 사람들이 넘어져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불꽃놀이 축제를 즐기려는 관람객의 행렬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하나비가 일본의 여름을 상징하는 이벤트로 자리 잡은 데다 매년 형형색색의 신종 불꽃들이 등장해 사람들을 열광시키기 때문이다.
하나비 마니아들은 행사 시작 며칠 전부터 점찍어 둔 자리 주변을 커다란 비닐과 테이프로 둘러쳐 놓고 ‘권리’를 주장한다. 그래도 불안하면 친구와 가족들이 교대로 며칠간 노숙을 하기도 한다. 가장이 좋은 자리를 확보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필수적인 가족 서비스의 하나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밤샘을 하는 직장인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나비 당일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든다. 시원한 일본의 전통 여름 복장인 유카타를 커플로 입은 젊은 남녀, 유카타를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 단위의 관람객….
행사장 주변의 노점상도 빠질 수 없는 명물이다. 문어를 넣고 만든 일본식 간식인 다코야키와 어묵, 야키소바(일본식 볶은 국수) 등의 달콤하고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또 다른 줄이 생겨난다.
불꽃놀이 시작까지 6시간 이상 남았을 무렵에 이미 행사장 주변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다. 무료한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 각자 취향에 맞는 아이템을 준비해 온다. 어른들은 맥주로 목을 축이고, 청소년들은 휴대용 텔레비전이나 게임기에 열중한다.
기다림의 설렘이 지루함으로 바뀌려 할 즈음, 마침내 첫 번째 불꽃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여름밤의 어두운 하늘은 순간 눈이 부시게 선명하고 화려한 불꽃으로 가득 덮인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오랜 시간 불꽃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진다.
2시간 정도 지속되는 하나비 대회에서 발사되는 불꽃은 대략 2만 발. 그중에는 지름 수백 m를 넘는 커다란 불꽃도 있다.
하나비가 끝나기 직전의 마지막 5분엔 남은 불꽃을 모두 소모하는 듯 수백 발의 불꽃이 동시에 밤하늘을 수놓는다. 그리고 ‘귀가전쟁’….
이번 여름에도 16일 열린 요코하마 대회를 시작으로 일본 열도 곳곳에서 어김없이 하나비 대회가 열린다.
올여름 일본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하나비 대회를 빠뜨리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수십만 명의 일본인을 상대로 지독한 귀가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지만, 한여름 밤의 꿈처럼 환상적으로 펼쳐질 하늘 가득한 불꽃들은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을 안겨 줄 것이다.
사랑에 빠져 있는 젊은 연인들. 밤하늘 가득한 불꽃 아래에서 당신들은 입을 맞추고 싶은 유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리.
장혁진 통신원·극단 ‘시키’ 아시아담당 총괄 매니저
escapegoa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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