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취조실. 밀폐된 공간 안에 검사와 영화 ‘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 만이 갇혀 있다. 영화 촬영 내내 일본 도쿄 온 동네를 질주해 불안감에 떨다 못한 주민들이 영화사를 고소했다고 상상을 해보자. 그(?)는 아마 이런 하소연을 했을 것이다.
“아, 그냥 취미생활 한 것밖에 없다니까요. 피 끓는 이 청춘을 어떻게 제어해요. 시속 200km로 페달을 밟아 봐요. 아우 그냥… 군침이 꼴깍∼♪”
영화 ‘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가 범한 죄는 세 가지. ①드리프트를 멋있다고 인정한 점(단순함) ②자신보다 빠른 상대를 용납할 수 없다는 점(승부욕) ③이성을 사로잡는 도구로 자동차 경주를 한 점(마초성) 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됐다. 하지만 영화 속 28청춘들은 젊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핸들을 꺾는다.
주인공 션(루커스 블랙)은 한 여성을 두고 길거리 레이싱을 벌이다 사고를 내 소년원에 갈 위기에 처한다. 결국 션은 소년원 대신 일본 도쿄로 전학을 결심하고 이혼한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미 드리프팅(작은 차체와 얇은 타이어를 이용해 미끄러지듯 커브를 도는 기술) 매력에 빠진 그가 도쿄로 왔다고 이를 끊을 리 만무하다. 우연히 같은 반 여학생 닐라(내털리 켈리)와 눈이 맞고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야쿠자 DK(브라이언 티)에게 경주 신청을 했다가 참패를 당한다. 그러나 DK의 동료인 한(성 강)으로부터 드리프트 기술을 전수받고 DK를 꺾을 날만 기다린다.
2001년 ‘분노의 질주’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던 1편과 2년 후 2편까지 이어진 시리즈는 국내에서도 괜찮은 성공을 거두었다. 전작의 팬들은 3편 역시 무난하게 호평을 할 듯. 이 영화의 장점은 엄청난 흡입력에 있다. 영화의 70%가 넘는 자동차 질주 장면이 숨 막힐 듯 다이내믹하다. 눈으로 따라가도 정신없다. 여기에 등장인물 간의 명확한 선악 구조나 단순한 스토리라인 역시 이 영화가 흡입력을 갖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걸작과 졸작은 종이 한 장 차이. 자동차 질주 장면을 제외하곤 얻을 것이 없다. 쭉쭉빵빵 미녀들이 즐비한 것이나 일본 도쿄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장면도 새로운 것은 아니기에. 여기에 션의 사부인 한이 “레이싱 하는 데 현대차로 경기할래?”라고 말하는 부분은 영화 내내 한국인으로서 귀에 거슬린다.
이 영화에는 사실 숨은 주인공들이 있다. 바로 번쩍번쩍한 250여 대의 레이싱 자동차. 폴크스바겐부터 닛산, 도요타, 미쓰비시 등 이름만 들어도 ‘주연급’이다. 최상의 드리프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자동차들은 긁히고 박히고 뜯기는 등 3중고를 감수했다. 이 중 DK의 ‘애마’인 닛산 페어 레이디 350Z(DK의 자동차)와 션이 DK와 대결할 때 몰았던 포드 무스탕, 그리고 한이 몰았던 주황색 마쓰다 베일사이드에 이번 영화에 대해 ‘5자 평’을 요청했다.
▽페어 레이디=“남성적 영화(아니, 우리를 갖고 경주하는 목적이 전부 여자 때문이에요. 등장하는 애들은 여자 친구를 사이에 두고 자동차 경주를 하고 핫팬츠를 입은 여자들은 우리 주위에 떼거지로 몰려 있고… 전반적으로 영화가 너무 남성적이고 마초적이지 않나요?)”
▽무스탕=“아시아 만세(내 생각에는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아시아 예찬론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것 같아요. DK가 션에게 ‘가이진(외국인)’이라고 조롱하는 장면이나 ‘도쿄는 패션 도시’라고 칭찬하는 모습 등은 서양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것 같아요).”
▽베일사이드=“썩소 너무해(난 다 좋은데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왜 그렇게 한결같이 썩소(썩은 미소)를 짓니? 혼자 있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심지어 단역들도 상한 동태처럼 썩소를 짓더라. 자기네들이 무슨 ‘썩소대왕’ 김희철인 줄 아나…).”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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