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는 한국 비빔밥과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밥은 중국, 형형색색의 나물은 인도나 티베트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 해당하며 한국은 가장 중요한 맛을 결정하는 고추장이 아닐까. 일본이 하는 일은 큰 그릇에 이런 문화를 받아들여 비비기 전에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 스기우라 고헤이(杉浦康平) 씨의 말마따나 일본 문화는 비빔밥이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고(수용성), 그것을 섞어(편집성) 체질에 맞게 바꿔낸다.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르듯, 우리는 일본을 알면서도 잘 모른다. 한류 열풍으로 일본열도를 석권한 듯한 자부심이 만연하지만, 사실 일본은 과거 경제대국의 명성에 못지않은 문화강국이다. 오죽하면 일본의 문화적 저력을 설명하기 위해 국민총생산(GNP)에 빗대어 국민총매력(GNC·Gross National Cool)이라는 개념까지 만들어졌을까.
이 책은 그래픽디자인부터 소설 패션 애니메이션 영화 건축 하이쿠 요리에 이르기까지 여덟 개 분야에서 일본 문화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분석했다.
다루는 폭이 넓으면서도 구체적이고, 심층적이면서도 어렵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일본통’인 저자들의 면면, 대체로 고른 수준의 글도 신뢰감을 준다.
비빔밥적 성향이 일본 문화의 본질이라면 세계에 진출해 일본을 알린 전위들은 역발상에 탁월했다. 1970년 패션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高田賢三) 씨가 파리에 문을 연 부티크 이름은 ‘정글 잽’. 서양인이 일본을 경멸조로 부르는 말인 ‘잽(Jap)’을 아예 상호에 썼다.
단점일 수도 있는 동양의 주변적 이미지를 장점으로 역이용하는 그의 발상은 패션 디자인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세계 패션무대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 중 한 명인 미야케 이세이(三宅一生) 씨의 디자인 개념도 옷감을 입체적인 몸에 맞추는 서양의 개념과 전혀 다르게 ‘한 장의 천’을 어떻게 걸칠 것인가, 옷과 사람 사이의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이용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비빔밥처럼 섞고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것을 어떻게 이어가는가. 대답은 일본의 전통문화 속에 있다. 일본은 3대 신궁 중 하나인 이세(伊勢)신궁을 20년마다 부수고 다시 짓는다. 20년은 한 세대의 교체주기다. 경지에 오른 전문가가 죽기 전에 다음 세대와 함께 신궁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지음으로써 기술을 완벽하게 이전하고 수백 년간 같은 모습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해체를 통해 보존하고, 뒤섞어 새것을 만들며, 일탈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는 일본 문화의 힘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 자신의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일본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읽어 둘 만한 책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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