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20>조선왕 독살사건

  • 입력 2006년 7월 25일 03시 00분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한국사는 연구하면 할수록 ‘만약, 이랬다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분야가 너무 많은데, 독살설 역시 그랬다. 만약 정조가 10여 년만 더 살았다면, 그래서 그의 사후에도 이미 성인이 된 순조가 친정을 하고 정조가 양성한 정약용 같은 인물들이 정승이나 판서로 보좌를 했다면, 그래서 정조 사후에도 그의 개혁 정책이 계속 진행되었다면, 조선의 운명은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조선왕 독살사건’은 12대 인종부터 26대 고종까지 독살설에 휩싸인 왕의 죽음 뒤에 숨어 있는 음모와 진실을 이야기한다. 왕의 독살설이 전해 내려온다는 건 당대의 정치적 갈등이 그만큼 첨예했다는 걸 입증하는 일이다. 이렇게 음모와 갈등 그리고 숨겨진 진실이라는 얼개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역사책이지만 마치 추리소설처럼 읽힌다. 조선 후기의 정치적 갈등이 결국 조선이 미래지향적인 국가로 나아가는 발목을 잡았다는 점은 독자에게 감정적 흥분마저 들게 하니 이래저래 책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덕일이라는 대중적 역사학자의 관심사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살피며 보는 재미도 있다. 그가 쓴 ‘사도세자의 고백’(1998년),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2000년),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2004년)을 ‘이덕일의 조선 후기 3부작’이라고 부른다. 조선 후기를 당쟁이란 코드로 바라보고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 사도세자, 송시열 그리고 정약용을 내세운 평전 성격의 역사서들이다.

이덕일의 학문적 관심사 중 하나가 당쟁인데, 이 주제로 조선후기를 살피다 보면 노론이라는 당파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노론은 경종 때 3년간 소론에 정권을 빼앗긴 시기 등을 제외하면 조선 멸망까지 무려 200여 년간 정권을 장악했다. 왕실이 아닌 일개 정파가 200년 이상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구조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은 한편으로는 조선 후기 3부작처럼 시대를 대표할 만한 인물에 맞춰진다.

따라서 ‘조선왕 독살사건’은 조선 왕들의 독살을 주요한 이야깃거리로 삼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 국왕과 신하의 관계가 속살을 드러낸다.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조선의 국왕은 무조건적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조건이 맞으면 충성하는 대상이었다. 이러다 보니 특정 당파가 임금을 만드는 일도 생기고 심지어 임금이 특정 당파에 속하는 일까지 생겼다. 대표적인 예가 영조대왕이다. 사도세자의 죽음도 결국 아버지와 아들의 정치 노선이 달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게다가 조선에서는 신하가 임금을 선택한다는 뜻의 ‘택군(擇君)’이 존재했으며,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은 명분 있는 택군이었다. 여기서 ‘만약에’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만약에 명분이 없을 경우 왕을 갈아 치우기 위해 독살했을 가능성은 없는가’ 하고.

역사책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만약’이란 단어가 수시로 등장하는 건 당쟁이 격화되면서 건강한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었고 결국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자학 유일사상의 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 책은 소설을 읽는 듯 긴박감이 넘치는 데다 조선 왕 독살이라는 주제로 조선 후기의 정치사를 관통하는 지적 재미도 쏠쏠하다. 소설책을 읽기에는 왠지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빈치 코드’류가 제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불어 한여름을 보낼 만하다.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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