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의 여름 공포물은 2004년 KBS2 ‘구미호외전’ 방영 이후 중단됐다. 심은하가 주연한 MBC ‘M’이 1994년 방영 때 최고 시청률 50%를 넘긴 이래 SBS ‘별’ ‘고스트’, KBS ‘RNA’ ‘신 전설의 고향’ 등이 매년 여름 방영된 것과 대조적이다.
그 이유는 시청자들이 웬만해선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슬래셔 무비(신체를 난도질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나 인터넷 등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장면들이 확산되면서 TV 공포물로는 시청자들의 ‘공포 욕구’를 채워 줄 수 없다는 것. 시청자들이 섬세한 심리 묘사와 치밀한 상황 변화 등 완성도를 갖춘 스릴러를 원하는데 그 요구 수준을 맞추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방송사 간부는 “공포물은 전문 지식이 필요하고 실험성을 가미해야 할 장르여서 PD들이 꺼린다”고 말했다.
공포영화 마니아인 복장현(28·회사원) 씨는 “납량특집 드라마는 내용과 특수 효과가 갈수록 유치하고 재미가 없어졌다”며 “‘M’처럼 사회적 이슈를 담아 완성도를 높이지 않는다면 TV 공포물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납량특집극의 시청률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2004년 ‘구미호외전’은 한창 인기 있던 김태희와 그룹 ‘신화’의 전진이 출연했는데도 평균시청률 15.4%(TNS미디어코리아)에 그쳤고, 2000년 방영된 ‘RNA’는 17.1%였다.
방송계에서는 아이디어 빈곤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작진이 흥행 성공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멜로 드라마에 관심을 기울일 뿐 새로운 소재나 장르에 도전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연기자들이 이미지 관리를 위해 공포물을 기피하는 것도 한 이유. 톱스타는 물론이고 신인 배우도 흉측한 분장을 하고 피를 흘리는 연기를 보여 주기 싫다는 것이다. 윤태진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는 “요즘 시청자가 원하는 공포 드라마는 심리적인 스릴러물인데 그런 작품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