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추기경은 이날 인사차 서울 혜화동성당 집무실을 찾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에게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정권 교체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강 대표와의 비공개 면담이 시작되자 먼저 “국민이 믿을 곳은 한나라당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잘해 달라”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이 전했다.
김 추기경은 면담 말미에는 “(한나라당에) 대통령 후보가 여러 명 있어 걱정된다”며 재차 “누가 되느냐가 아니라 정권 교체가 중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나라당이 대선후보 선출을 놓고 서로 다투지 말고 정권 교체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 추기경은 ‘한국 장관이 미국의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면 안 되느냐’며 장관들에게 국회에서 적극 대응하라고 주문한 노 대통령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김 추기경은 “임기 말에 이런 말을 해서 대통령의 인기가 높아질지는 모르나 국가에 이익이 되는지는 의문”이라며 “미국에 대해 욕을 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국가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또 “(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걱정이 많이 된다”며 “이종석 장관의 말을 옹호하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아슬아슬하다”고 걱정했다.
김 추기경은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 의장인 발터 카스퍼 추기경과 함께 24일 노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무슨 얘기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한마디 말도 안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카스퍼 추기경과 자신이 나눈 얘기를 소개했다. 카스퍼 추기경이 “미국 없이 서독이 발전하고 통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미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 김 추기경은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이 중요하다는 것을) 국민이 강하게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유 대변인은 김 추기경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자세히 소개한 뒤 ‘정권 교체’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브리핑을 자청해 “김 추기경이 정권 교체가 돼야 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과거 한나라당에서 대선후보들이 경선에 불복해 정권 창출을 못한 점을 두고 한 충고였다”고 해명했다. 그는 “김 추기경이 한나라당을 지지했다기보다는 충고를 한 것”이라며 “김 추기경이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한 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덧붙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허영엽 신부는 “취임 인사차 찾아온 강 대표에게 김 추기경께서 덕담 수준으로 한 얘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면서 비공개로 이뤄진 면담 내용이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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