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7월 28일.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근대 올림픽 사상 최초로 성화가 부활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스타디움 상단에 설치한 마라톤 중계탑 위에 대형 접시를 놓고 기름을 부어 불을 켰다.
고 손기정(1912∼2002) 씨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태양열을 이용한 성화 채화 및 성화 봉송 릴레이가 처음 시작됐다. 성화는 고대 종교의식을 주관하던 사제의 옷차림을 한 여성들이 오목 거울에 초점을 맞춘 뒤 태양광선을 이용해 채화했다. 성화봉송 릴레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행해지던 ‘람파데드로미아’라는 횃불 릴레이 경주를 토대로 고안됐다.
당시 독일을 지배했던 아돌프 히틀러는 발칸반도 여러 나라의 청년들을 동원해 아테네에서 베를린까지 성화 릴레이를 시켰다. 이것은 히틀러가 발칸 지방에 대한 독일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모략으로도 해석됐다. 당시 릴레이의 총거리는 3000km였으며, 주자들이 1km씩 나눠 뛰었다.
이 불은 1948년까지 단순히 ‘올림픽의 불(Olympic Fire)’이라고 불렸지만 1950년 올림픽헌장에서 공식적으로 ‘성화(Sacred Olympic Fire)’라고 이름 붙여졌다. 성화 점화식은 늘 올림픽 개회식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그래서 성화 봉송의 최종 주자와 점화 방식도 대회 직전까지 극비에 부쳐진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에는 섬마을 선생님 정선만 씨와 마라톤 선수 김원탁 씨, 여고생 손미정 양이 리프트를 타고 세계수(世界樹)로 명명된 22m 위의 성화대까지 올라가 동시에 점화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장애인 양궁 선수가 성화대에 화살을 쏘아 점화해 탄성을 자아냈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파킨슨 병을 앓고 있던 왕년의 헤비급 복싱 스타 무하마드 알리가 떨리는 손으로 점화해 진한 감동을 안겨 줬다.
그렇다면 동서 냉전의 벽을 허문 1988 서울 올림픽 때 활활 타오르던 성화는 어디에 있을까. 성화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으로 옮겨져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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