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衣의 춤사위, 몽골 초원 깨우다

  • 입력 2006년 7월 30일 19시 51분


해발 1400m의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열린 서울현대무용단의 ‘고원을 춤추다’
해발 1400m의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열린 서울현대무용단의 ‘고원을 춤추다’
몽골국립마두금연주단의 공연
몽골국립마두금연주단의 공연
에델바이스가 흐드러지게 핀 몽골의 초원. 그 한가운데서 울리는 마두금(馬頭琴)의 연주음은 바람 소리처럼 상쾌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배경으로 하얀 천을 휘날리며 넘실대는 춤사위는 광활한 대지와 한 몸이 되었다. 오르팅도(장가·長歌)를 부른 뒤 이어진 몽골 여가수의 구성진 '아리랑' 가락은 '농부가'를 열창했던 명창 안숙선 씨의 눈가에 눈물을 맺히게 할 만큼 한국과 몽골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28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북동쪽으로 80km 떨어진 테렐지 국립공원. 해발 1400m의 초원에서 '둥둥둥'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한국의 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위원장 한명희)와 몽골의 전통예술재단이 공동 주최한 '초원의 영고(迎鼓)대회'.

영고제는 고대 부여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부족간의 동맹을 강화하던 제천의식을 뜻한다. '초원의 영고대회'는 혈통적 동질성을 가진 한국과 몽골의 문화 교류를 위해 열린 음악회. 행사장에는 유목민들이 말과 낙타를 타고 모여들었고, 울란바토르 대학생 등 1000여 명의 관객들이 자리를 잡았다.

공연은 몽골 국립 마두금연주단의 연주로 막이 올랐다.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두금은 말총으로 꼬아 만든 두 개의 현이 달린 몽골의 전통악기. 세계에서 유일하게 말꼬리 털로 만드는 현악기인 마두금은 첼로보다 깊고 풍부한 음색을 자랑했다. 몽골의 여가수 세 네르구이 씨는 마두금의 반주에 맞춰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멋들어지게 불러 갈채를 받았다.

몽골 공연단에 이어 대금 명인 조창훈 씨가 바위에 앉아 청아한 대금 연주를 들려준 뒤 지름 4m의 대고(大鼓)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흰 옷을 차려 입은 서울현대무용단의 무용수들의 춤사위가 푸른 초원을 수놓았고 진도 씻김굿 예능보유자 박병천 씨의 진도북춤이 흥겨움을 더했다. 마무리 순서로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격정적 리듬에 맞춰 강강술래가 시작되자, 유목민과 함께 있던 말들이 흥분해 멀리 달음박질치는 풍경도 보였다.

공연을 지켜본 지라네크바실 주몽골 체코 대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한국이 이처럼 대단한 문화를 갖고 있는지 몰랐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며 찬사를 보냈다.

울란바토르시 문화예술청장 체 푸릅후(41) 씨는 "초원에서도 이런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몽골은 현악기가 주류인데 비해 한국의 공연은 타악과 노래, 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행사 이튿날 몽골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한몽친선음악회'는 몽골과 한국의 전통 음악이 어떤 DNA를 공유하고 있는 지 가늠하는 자리였다. 명창 안숙선 씨의 판소리 '흥부가'와 한 사람이 동시에 3~4개의 멜로디를 노래하는 몽골의 전통가창 '후미'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계곡의 물소리에 맞춰 목소리의 기본음을 잡는다'는 뜻의 '후미'는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창법이었다.

안 씨는 "가성을 주로 사용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민요와 달리 몽골의 '후미'나 '오르팅도'는 한국의 판소리처럼 육성(肉聲)을 써서 노래한다. 또 꾸밈음을 내는 부분이 우리 정서와 무척 닮았다"며 "우리 음악의 시원(始原)을 함께하는 소리를 듣고 나니 후련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울란바토르(몽골)=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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